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만권당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만권당(萬卷堂)

    고려시대사제도

     고려 후기에 충선왕이 원나라의 연경(燕京)에 세운 서재(書齋).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만권당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 후기에 충선왕이 원나라의 연경(燕京)에 세운 서재(書齋).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307년(충렬왕 33)에 원나라에서 무종(武宗)을 옹립한 공으로 다음해에 복위한 충선왕이 1313년(충선왕 5)에 왕위를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그 다음해인 1314년(충숙왕 1) 원나라로 가서 자신의 사제(私第)에 이를 세웠다.
    남송(南宋) 출신의 유학자로서 원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던 당대의 명유(名儒)인 요수(姚燧)·염복(閻復)·조맹부(趙孟頫)·장양호(張養浩)·원명선(元明善)·우집(虞集)·소구(蕭㪺)·홍혁(洪革) 등이 이 곳에 초치(招致)되어 학예를 수련하였고, 고려에서는 이제현(李齊賢)이 충선왕의 시종신(侍從臣)으로서 이들과 교유하였다.
    따라서 고려와 원의 문화교류가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특히 여기에 모인 남송의 학자들은 당시 남송에서 완성된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과 시(詩)·서(書)·화(畫)에 깊은 조예가 있었으므로 이후 고려에 주자성리학이 보급되고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 등 새로운 서화의 기풍이 수입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1320년에 원나라의 인종(仁宗)이 죽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충선왕의 지위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마침내 티베트[吐蕃]로 유배되기에 이르렀으므로 이 때 자연히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익주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