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주(竹州). 유경(柳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하였다. 1275년(충렬왕 1) 전라도안찰사(全羅道按察使)가 되었는데, 이때 응방(鷹坊)의 오숙부(吳淑富) 등이 세도(勢道)를 믿고 함부로 굴자 장흥부부사(長興府副使) 신좌선(辛佐宣) 등과 함께 이를 미워하여 예를 갖추어 대접하지 않았다. 이에 오숙부 등이 돌아가서 안전(安戩)과 신좌선이 먹이를 주지 않아 가장 아름다운 매 두 마리가 죽었다고 하여 파직 당하였다.
후에 내료(內僚) 이지저(李之氐)에게 부탁하여 정방(政房)에 들어가서 대부소윤(大府少尹)으로서 필도치(必闍赤: 정방의 서기직)가 되고, 1285년(충렬왕 11)에는 판비서사(判秘書事)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윤신걸(尹莘傑) 등을 급제시켰다.
이듬해에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는데 왕이 한 환관에게 참관(參官)을 제수하고자 하므로 끝내 이를 만류하여 왕이 마음을 돌이켰다. 이와 같이 전주(銓注: 인사행정)를 맡아 굳게 바름을 지키고 아부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쇠떡[鐵餻]이라 칭하였다.
1287년에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되고 이어 충청도안무사(忠淸道安撫使), 이듬해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성절사(聖節使: 황제나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290년 합단적(合丹賊)이 동쪽 변방을 내침해왔을 때 경상도도지휘사(慶尙道都指揮使)·충청도도지휘사(忠淸道都指揮使), 1292년 서북면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