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관 ()

목차
유교
개념
세상의 끝이나 징조에 대한 견해를 체계적으로 갖춘 세계관.
목차
정의
세상의 끝이나 징조에 대한 견해를 체계적으로 갖춘 세계관.
개설

계세(季世)나 말엽(末葉)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말세관은 서구의 종말관(終末觀, eschatology)과는 달리 세속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주역(周易)』「계사전하(繫辭傳下)」에 “역이 흥기한 것은 은의 말세, 즉 성덕의 주초(周初)에 해당하는가(易之興也其當殷之末世周之盛德邪).”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흥망성쇠가 교대한다는 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처럼 말세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계세 혹은 말엽이 지니는 의미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순환론(循環論)의 사고가 곁들여 있으며, 당초에는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자연현상의 생멸, 변화의 현상에서 유추한 관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동양 전래의 우주론적인 회귀사상이나 윤회관념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문제이다. 개인이나 집단에게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이나 전면적인 파국 내지 최후의 심판에 따른 응보(應報)와 같은 신학적 교설로서의 종말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문화사의 오랜 과정에서 동서사상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왔고, 특히 최근세에 이르러서는 기독교 문화가 우리나라의 정신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말세론과 종말관을 혼동하는 감이 없지 않다. 또한, 말세론의 유래 자체는 본래 중국사상에 연원을 두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보다 종말론에 가까운 강력한 뜻을 내포하게 된 것은 불교의 말법사상(末法思想) 때문이라고 할 때, 불교가 국교의 위치를 차지한 통일신라시대 무렵부터 말법사상이 대두하면서 이것이 사회변혁의 혼란상을 가리키는 말세론과 결부된다.

따라서 말세론 자체가 지니는 뜻은 세속적 현실과 관련지어 무규범상태(無規範狀態)의 도덕적 타락상을 규정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와 규범의 확립을 기대하는 심리적 기제라는 것에만 국한될 뿐이다. 그러나 말세관이 오늘날에 와서 보다 풍부한 내용으로 심화되고 종교사상으로 승화되는 데에는 역사·문화의 배경이 크게 작용했으며,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 상고시대부터 서구 종교사상의 종말관과 교섭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내용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말관은 이미 구약성서시대에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교설에 따르면, 선신(善神, Ahura)과 악신(惡神, Ariman) 사이의 투쟁은 세계의 고뇌를 상징한다. 그리고 최후의 종말에 이르러 소산스(Soshans)가 구세주로 등장해 이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제하고 상과 벌을 주는 심판을 행한다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선신과 악신의 투쟁관계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유일한 창조신 뜻이나 예수의 재림에 의해 세계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절대화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기독교의 차이점은 선신과 악신의 투쟁이라는 것 말고도 유대교·기독교에서는 채택하지 않는 세계주기(世界周期)의 관념이다. 그 때문에 유대교·기독교에서는 세계의 종말은 오직 한 번, 즉 일회기적(一回期的)으로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서양의 역사·문화가 완전히 기독교에 의해 형성되어오는 과정에서 종종의 시대적 위기와 시련을 이러한 종말관과 결부지어 해석하는 많은 사례를 들 수가 있다. 정치적 위기나 도덕적 타락과 같은 인간의 행위 때문에 생겨나는 혼란상을 종말관과 결부지어 해석하는 사례는 물론이고 심지어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와 같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의 현상도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다.

기독교가 서양의 정신사를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종말관은 세계의 구조를 완전히 이원화해 세속적인 현세를 영원의 저 세상[彼岸]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설정해, 현세를 무시하고 내세(來世)를 존중하게 된다. 더욱이 경험상으로 볼 때 현세는 질병과 고통 및 가난이나 사회적인 악의 횡행에 덧붙여 예기하지 않은 죽음에 직면해야 하는 공포의 현실이다. 따라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것을 청산하고 영생의 지복(至福)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 세계[此岸]의 예정된 종말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인위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상천국의 도래를 대망하는 천년왕국운동으로 나타났다. 특히 과격한 사회운동을 일으킨 프로테스탄트 좌파 계열의 교파 활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천년왕국의 실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므로 니케아공의회 이래 ‘절박한 상황에서 집단적·궁극적·전체적이며 현세적 구제’를 대망하는 종말론의 적극적 실천을 이단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기독교의 종말론은 사회 변혁기에 커다란 잠재력을 과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유대교·기독교의 종말론은 두 가지의 국면에서 우리나라의 말세론에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된다. 첫째로, 구약성서시대에 유대교와 불교와의 관계이다. 불교 자체는 원래 우주 종교로서 뚜렷한 종말론보다는 회귀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여러 갈래 가운데에서 대중성을 띤 정토불교(淨土佛敎)와 미륵불교(彌勒佛敎)는 특히 내세지향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종말사상과 메시아의 출현에 따른 구원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토불교에서는 현세를 염리예토(厭離穢土: 더러운 사바세계를 싫어하여 여의는 것)라 하고 내세를 흔구정토(欣求淨土: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라 하여 뚜렷한 내세지향적 교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사후의 극락왕생을 희구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집단적이고 전체적인 구원을 대망하는 미륵불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점에서 유대교·기독교의 종말관에 유비(類比)되는 것은 오직 미륵불교에 국한되며, 이것은 북전(北傳)의 대승불교가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종말사상을 흡수하는 가운데 뚜렷이 미륵불교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음을 반증한다. 다시 말해서, 페르시아의 고대 종교사상은 서쪽으로 유대교·기독교에, 그리고 동쪽으로는 미륵불교사상에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해, 미륵불교가 동양의 역사·문화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설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회 변혁기에 미륵불교의 신앙이 왕성하게 되고 이것이 상대(上代)부터 근세 말에 이르기까지 반왕조적인 사회 변혁을 태동하게 하는 데 중추를 하게 된다. 그러나 미륵불교의 사상은 유대교·기독교에서처럼 종말관을 보다 심화하고 뚜렷한 교설로서 개인이나 집단의 운명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투시하는 데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종교 상징으로서의 구심점이 되는 미륵의 현현(顯現)에 관하여 막연한 설정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미륵이 머무르고 있는 도솔천(兜率天)과 인간이 사는 염리예토와의 대응관계라든지, 아니면 그가 구세주로 현현하여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할 과제, 가령 최후의 심판 같은 모티프가 결여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륵불교의 사상은 단순히 미륵불의 현현 자체가 지복의 복전(福田)을 이룩한다는 대망의 사상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륵불교는 종말론의 사유와 독특한 역사관을 동양의 종교문화에 심어주는 데 중추적인 구실을 하였다.

(1) 불교의 말세관 미륵불교의 종말관이 이 세계의 종언과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예언하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비해, 불교 자체는 원래 우주 종교로서 세속적인 역사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여러 차례의 법난(法難)이라는 멸절의 위기를 겪으면서 자연히 불법(佛法)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정법(正法)·상법(象法), 그리고 말법(末法)의 세 가지 시대로 구분하는 관념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관념에 따르면, 석가입멸 후 500년을 정법의 시대로, 그 다음 1000년을 상법의 시대, 그리고 다시 그 뒤의 1만년을 말법의 시대로 구분된다. 그리고 정법의 시대의 특징을 정법견고(正法堅固)라고 하고, 상법의 시대에는 조탑견고(造塔堅固)의 특징이 나타나며, 말법의 시대에는 투쟁견고(鬪爭堅固)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신앙의 주체가 판단하기에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당대의 실정이나 세태가 말법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기 십상이므로 여기에서 뚜렷한 말세관이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말세관은 단순히 불교신앙집단의 존속이나 불법의 호지(護持)라는 측면을 넘어서 당대의 세태 전반을 말세로 규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통일신라 이래 불교는 왕권을 유지하게 하는 막강한 이데올로기로서 기성의 체제나 정통왕조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정신적 지주였으며, 후대에 이르러 호국불교로 규정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정통왕조가 흔들리는 말기적 상황에서는 불교의 말세론이 드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초에는 불교 자체의 법난이나 종교적 박해의 뒤에 생기는 말법사상은 왕조교체기의 시대적 혼란상을 가리키는 말세관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더욱이 고려조에 이르러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외민족의 침략을 받아야 했고, 특히 몽고군의 침략으로 왕조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며, 국가의 운명자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단순히 법난을 피해야 한다는 소극적 자세보다는 적극적으로 불법(佛法)의 원력(願力)을 빌려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대장경을 주조하는 커다란 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에서는 불교의 말법사상에서 유래한 말세관이 민중 심리의 잠재적 기층에 뚜렷한 자리를 차지했고, 사회적 혼란상이 가중될 때마다 표면에 부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상으로 나타난 결과를 볼 때 구체적인 말세관의 여러 징후군을 적시(摘示)한 표현은 도저히 찾아볼 길이 없으며, 따라서 관념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교를 체제 교학으로 채택한 조선조에는 고대적 사유가 청산되고 중세적 질서가 확립되면서, 즉 역사 사회의 발전을 성수한 단계에 이르러 민중이 역사의 지향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세력으로 등장하면서부터 말세관은 보다 뚜렷한 개념으로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2) 유교의 말세관 조선조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구현하려고 한 이상, 유교문화의 가치관이 지니는 본질을 투시해야만 근세 이래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말세관의 정체를 개념적으로 확실히 파악할 수가 있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는 도의가 실현되는 이상적 상태, 즉 대동(大同)의 세계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도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우주와 세계 최고의 범주인 천도(天道)에 순응한다는 것을 뜻한다. 쉽사리 본연의 인성(人性)에서 멀어져서 정욕에 사로잡히기 쉬운 인간사회에서 완벽한 도의의 실현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유교는 차선의 단계로 소강(小康)의 상태를 설정한다. 소강의 상태에서는 각자가 저절로 자신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도의의 실천을 기대하기보다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구체적 실천덕목으로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강조해 체제 안정의 질서를 도모한다. 그러면서도 소강의 상태에 있어서는 항상 대동의 상태를 모범으로 생각하고 거기에서부터 모든 근거를 부여받고자 하는 상고주의(尙古主義)가 지배적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적인 과거지향으로서의 복고주의(復古主義)가 아니라,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원초적인 상태, 즉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따른 도의가 실현되는 대동의 세계에서 규범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교의 감계주의(鑑戒主義)라는 독특한 역사관이 성립한다. 즉, 대동의 세계관은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경(理想境)인 것이기 때문에 소강의 상태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강의 상태는 이상의 지표로서 대동의 세계보다는 못하다는 각성을 일깨우지 않는 한 그나마 항상태(恒常態)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도의심을 일깨우고 규범의식을 강조하며, 효제충신의 덕목은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각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 이래 성리학자들이 이러한 이념 아래에서 민중의 교화에 힘쓴 사례는 현저하다. 심지어 조광조(趙光祖)와 같은 이상주의자가 오랑캐라고 규정되는 변방의 이민족 침략자들에게서조차 이러한 도의심의 발현을 기대했던, 동고내사건(東古乃事件)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그러나 대동이라는 이상의 세계를 묘사한 현실로서의 소강의 상태도 극심한 사회 혼란이나, 더욱이 도의심의 발현을 기대할 수 없는 외민족에 의한 외환(外患)에 처했을 때는 그 자체가 와해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쟁란(爭亂)의 상태이다. 실제로 조선 중기 이래 왜호(倭胡)의 양란(兩亂)을 겪으면서 소강의 세계가 와해되고 쟁란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자각이 뼈저린 체험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역사의 인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쟁란에 대한 인식은 도의심의 진작이나 효제충신과 같은 덕목을 강화해 구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체제내적(體制內的)인 노력만으로는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 민중의 생각이었다. 여기에서 말세관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유교를 통치의 이념으로 확립한 조선시대에서의 말세관은 단순한 불교의 정법수호의 사상과 같은 종교적 관념의 테두리를 넘어 전 우주와 세계의 파국의 체험을 목전에 둔 절박한 종말사상으로 파급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서구의 종말관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점은, 유교의 말세관에서는 종말론적인 파국이란 현실로서의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종지부를 찍는 이 세계의 종말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생각 때문에 지상천국과 같은 별천지를 급작스럽게 실현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이미 유교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단좌도로 지목되는 음양도나 도가사상 등이 한사(寒士)나 잔반(殘班)이라는 불우 지식인들에 의해 깊이 연찬이 되었고, 또한 소강절(邵康節)의 원회운세설(元會運世說)은 형이상학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이것은 바로 역사적 시간의 주기성 내지 순환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자연현상이 주기적인 순환과정을 반복하듯이 역사적 시간도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되풀이한다는 법칙성을 재확인하게 해 준다. 그리하여 말세관은 도덕의 타락이나 정치의 혼란에서 오는 말기적 현상으로서 본래의 이상적 상태로 복원하려는 시점으로 파악하게 된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서구의 충격으로 불리는 외래의 요인 때문에 전통문화의 동질성이 완전히 와해될 것만 같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체험해야 했다. 그리하여 자문화의 재생운동으로 갖가지 사태가 벌어지며, 또 사회 경제적 파탄에 직면해 민중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저항운동이 빈발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말세관을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새로운 시대의 전개를 대망하는 집단적 요청으로 받아들여져서 동학운동이 태동한다든지, 후천개벽사상(後天開闢思想)이 등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말세관은 전면적인 파국이나 종말론적인 체험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예컨대,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崔濟愚)의 저작물을 보더라도 분명히 말세관에 입각해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약속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순환론 내지 동양 전래의 역사의 주기설에 입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최제우는 상원갑(上元甲)·중원갑(中元甲)·하원갑(下元甲)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이 동학을 창도(唱道)하는 시점을 하원갑과 상원갑이 교차하는 접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상·중·하원갑이란 원래 술사(術師)들이 60갑자를 1주기로 말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시간적 주기, 혹은 시간의 영원회귀성을 뜻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물론, 동학사상에는 전해 내려오는 각종 비결서에 담겨진 묵시록적(默示錄的)인 종말의 예언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종래의 상고주의적인 태도를 넘어서 수구적(守舊的)인 복고주의의 색채가 한층 두드러지는 것은 종래의 유교문화가 지닌 보본반시(報本反始: 근본에 같고 시초로 돌아감)의 사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암시한다. 아울러 동양적 우주론이 지닌 윤회사상이나 순환론을 형이상학적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시대의 아들’인 최제우로서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말세관을 정식으로 언표(言表)의 형식을 빌려 말대(末代)라고 표현한 사람은 강일순(姜一淳)이다. 강일순은 최제우보다 한 세대 뒤늦게 활동했기 때문에 봉건적 신분 질서의 구체제를 청산하고 근대세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극도의 가치관의 혼란상을 절실히 체험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가 ‘말대’라고 표현한 데 대해 우주론적 혹은 종교적인 의미를 크게 부여하기보다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의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말한 ‘말대’라는 것은 문맥상으로 보아 그의 중심 사상인 후천개벽의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종말론적인 함의보다는 당대의 시대상을 함축하는 사회사적인 의의가 큰 것이다. 무엇보다도 갑오개혁 이후에 전통적인 신분 사회가 실질적으로 와해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19세기 후반에 개화론을 주창한 선구자들도 전통적인 도(道)에 서구의 물질문명의 소산을 접목하자는 동도서기(東道西器)를 내세우면서 개혁론을 전개하였다.

‘도’라는 말이 지닌 뜻은 원래 광범위하고 심오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구체성을 개념화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봉건적 신분질서가 허물어지면 ‘도’의 실체마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효제충신에서 잘 나타나는 바와 같이 수직적인 인간관계의 체계와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 구조가 와해되면 ‘도’는 단순한 개인의 주체적인 자기 각성이라는 것 이외에 외형상 그것의 실현을 측정할 객관적 기준이 없어진다.

이것이 근대적 시민사회를 지배하는 평등의 개념에 기초한 사회의 인륜질서로 대치되지 않는 한 무규범의 상태를 방불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무규범 상태에 대한 별안간의 체험은 ‘도의가 땅에 떨어진 말세이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따라서 ‘말세’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신분사회가 급속도로 와해되는 과정에서 급조된 감이 짙다.

비록 그 말 자체의 연원을 추적해 보면 불교의 말법사상이나 유교의 대동사상에서부터 맥락을 잇게 되지만, 적어도 한말에 이르러 신분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가 수직적 체계에서부터 수평적 체계로 바뀌지 않을 수 없는 혼돈의 와중에서 고착된 것이다.

참고문헌

『동경대전(東經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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