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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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궤범 5권(10) / 무고초입배열도
악학궤범 5권(10) / 무고초입배열도
무용
작품
고려 때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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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때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내용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따르면 충렬왕 때 시중 이혼(李混)이 영해(寧海)에 유배되었을 때 바닷가에서 물에 뜬 뗏목을 얻어 큰 을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크고 웅장해 북을 두드리며 춤춘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의 형식은 북을 가운데 놓고 원무(元舞: 북채를 들고 북을 치는 사람)와 협무(挾舞: 원무 주위를 돌며 춤추는 사람)로 나누어져, 원무가 북채를 두 손에 들고 시종 북을 에워싸며 마치 꽃봉오리 위에 하늘거리는 나비인 양 어르고 두드리며 도는 동안 협무는 주1를 두 손에 들고 그 둘레에서 논다. 그 춤이 바뀌는 모습이 마치 두 마리의 나비가 꽃을 어르면서 펄럭이는 것 같고,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주2를 빼앗으려고 다투는 것 같은데, 악부(樂部)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춤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면을 지니고 있다.

무고에 대해서 기록한 문헌으로는 『고려사』 · 『악학궤범(樂學軌範)』 · 『홀기(笏記)』 및 1920년대의 『무고무보(舞鼓舞譜)』 등이 있다. 이 중 『고려사』 · 『악학궤범』, 1920년대의 무보 등 세 기록을 비교, 분석해보면 세 기록이 모두 ① 입장에서 주3하기까지의 도입부, ② 북을 울리지 않고 춤추다가 북을 울리면서 춤추고 절정을 이루는 주요부, ③ 읍하고 퇴장하는 종결부로 이루어진다.

1829년(순조 29)에 편찬된 『진찬의궤(進饌儀軌)』 권3에 따르면, 무고의 의상은 무원(舞員)이 화관을 쓰고 청 · 적 · 흑 · 초록 주4, 속은 남색상(藍色裳), 겉옷은 홍초상(紅綃裳)을 입고 홍단금루수대(紅緞金鏤繡帶)를 띠며, 오채한삼(五彩汗衫)을 매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또, 1848년(헌종 14)의 『진찬의궤』 권3 정재여령조(呈才女伶條)에는, 위 여령의 복식과 같고 황초단삼(黃綃單衫)에 각각 청 · 홍 · 흑 · 백의 쾌자를 입는 것이 다르다. 1877년(고종 14)의 『진작의궤』에서는 원무가 자적갑사괘자(紫的甲紗掛子)에 주5를 띠는 점이 순조, 헌종 때의 복식과 다르다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악학궤범(樂學軌範)』
『진찬의궤(進饌儀軌)』
『진작의궤(進爵儀軌)』
『궁중정재무도홀기(宮中呈才舞圖笏記)』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주석
주1

팔고무에서, 협무하는 네 사람이 양손에 드는 세 가닥 진 꽃송이. 우리말샘

주2

용의 턱 아래에 있는 영묘한 구슬. 이것을 얻으면 무엇이든 뜻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3

인사하는 예(禮)의 하나.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 우리말샘

주4

윗도리에 입는 홑옷. 모양은 저고리와 같다. 우리말샘

주5

남색의 전대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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