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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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조선 초기의 군용과 조운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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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의 군용과 조운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배.
내용

1461년(세조 7) 10월 좌의정 신숙주(申叔舟)가 왕에게 조선(漕船)과 병선(兵船)을 한척의 배를 만들어 겸용할 것을 진언하자, 왕이 동의하고 신숙주를 전선색의 책임자인 제조(提調)로 임명함으로써 병조선의 개발은 시작되었다.

당시의 군선은 왜구(倭寇)를 육상에 상륙시키지 않고 해상에서 무찌르기 위한 방안으로 계속 증강되어 조선 초기에 막강한 세력이 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군선은 다음 표에서와 같이 모두 829척에 달하였으나, 그 선종(船種)과 선제(船制)는 수시로 아무런 규격도 없이 건조된 것이므로 잡다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한편 조운선(漕運船)의 경우는 고려 말기에 왜구의 창궐로 조운의 길이 완전히 막혀 세곡(稅穀)의 운반은 오로지 육운(陸運)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왜구의 기세가 꺾인 조선 초기 태종 때부터 조선(漕船)을 건조하여 해로(海路)를 통한 조운을 재개하기 시작해, 세조 때에는 조선을 크게 증강해야 하였으며, 병조선의 개발도 군선을 정비하고 조운선을 증강해야 하는 실정에서 착수되었던 것이다.

병조선은 1465년(세조 11)에 완성되었는데 ≪세조실록≫에서 그 경위를 보면, 같은 해 7월 경기감사에 명하여 도내의 만호(萬戶)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선군(船軍)이 80명인 대선(大船) 2척, 50명인 중선(中船) 4척, 30명인 소선(小船) 6척에 각각 수전(水戰)의 장비를 갖추고 26일까지 양화나루[楊花渡]에 집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인 8월 2일 왕이 중궁(中宮) 이하의 왕족들과 영의정 신숙주 이하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희우정(喜雨亭)에 나가 앞서 불러들인 경기의 병선을 두 패로 갈라 수전을 연습하게 한 바 크게 성공을 거두어 병조선은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병조선 개발에 대한 이러한 경위는 ≪동국문헌비고≫와 그 뒤 증보된 ≪증보문헌비고≫의 병고주사조(兵考舟師條)에도 “세조 11년 비로소 병조선을 두었는데, 그 때에 신숙주를 전함사제주(典艦司提調)로 하여 중국·일본·유구(琉球)의 선체를 널리 보고 절충하여 대·중·소의 배를 만들어 쓰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대선에서 상장(上粧)을 붙여 군용으로 쓰고 상장을 철거하여 조운에 쓰도록 하였는데, 하나의 배를 두 가지로 쓸 수 있으므로 그것을 병조선이라 하였다.”라고 요약되어 있는데, 거기에 ‘박관당왜유구등국선체절충위선(博觀唐倭琉球等國船體折衷爲船)’이라 한 구절이 잘못 이해되어 마치 병조선은 중국·일본·유구의 배를 모방해서 만들고 따라서 병조선은 당시의 다른 선박과 아주 다른 것처럼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병조선은 세종 말기 이래로 왜구가 거의 근절되어 그간에 증강되었던 군선과 선군이 군사적으로 쓸모가 없어져서 군선의 규격을 통일하여 평화적으로 조운에도 이용하기 위하여 개발된 아주 전통적인 선박이다. 이는 병조선이 대맹선·중맹선·소맹선 등으로 발전했다는 사실로도 이해될 수 있다.

세조 때에 편찬되어 성종 초년에 반포된 ≪경국대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 군선인 맹선은 조운에도 활발히 이용되는 겸용선으로 병조선이 개명된 것인데, 오직 병조선 중선(中船)의 정원이 50명이던 것을 중맹선의 정원을 60명으로 하는 등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다.

병조선 중의 대선을 조운에 사용할 때의 운반능력은 800석 정도였지만, 그 선형 구조는 다음 그림에서 보는 조선 후기의 조운선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세조실록』
『세종실록』
『증보문헌비고』
『조선왕조군선연구』(김재근, 일조각, 1977)
『한국선박사연구』(김재근,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4)
집필자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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