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 ()

고대사
지명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
지명/고지명
지역
섬진강 하류|순천
내용 요약

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정의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
위치

일제 강점기 이래 사타의 위치 비정과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학자들은 주1에 기준하여 사타의 위치를 현재의 경북 상주, 경남 사천, 경북 인동, 전남 순천 등 여러 곳에 비정하여 왔으며 주2에는 순천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형성 및 변천

사타는 『일본서기』 게이타이[繼體] 6년 겨울 12월조에 기록된 임나(任那)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통상 지명으로 파악하지만 순천 일원에 위치한 소국의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사타에 관한 기록이 부족하여 상세한 검토가 어렵다.

다만, 사타를 순천의 옛이름인 삽평(㰱平) 혹은 사평(沙平)과 관련지워 순천으로 비정하는 견해, 그리고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천 일대의 운평리고분군을 사타의 유력층 묘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주목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타는 5세기 후반 대가야가 섬진강 하류를 장악하였을 때 대가야권에 포함되었다가 백제 무령왕의 재위 연간에 해당하는 6세기 초 백제의 주3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의의 및 평가

사타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 아직 학계에서 일치된 견해는 없다. 그 때문에 임나 4현 주4 기사에 대한 해석 또한 다양하다. 다만 사타의 중심지를 순천 일원으로 보고 그곳 고고학 자료의 변천 양상을 통해 사타의 정치적 동향을 파악하려는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향후 관련 연구가 한층 심화되면 임나 4현 할양 기사의 실체가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 일본서기』

논문

이영식, 「가야제국의 발전단계와 초기고대국가론」(『한국고대사연구』 89, 한국고대사학회, 2018)
홍성화, 「"일본서기" 소위 '임나4현 할양' 기사에 대한 고찰」( 『사총』 87,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2016)
이동희, 「순천 동천유역의 정치체 성장과 변동 과정」( 『중앙고고연구』 18, 중앙문화재연구원, 2015)
백승충, 「임나 4현의 위치 비정」 (『역사와 경계』 85, 부산경남사학회, 2012)
전영래, 「백제 남방경역의 변천」(『천관우선생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 정음문화사, 1985)
주석
주1

‘음상사하다’의 어근. '음상사하다'는 글자는 다르나 음은 서로 같다는 의미이다.    우리말샘

주2

요 몇 해 사이.    우리말샘

주3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    우리말샘

주4

땅이나 물건 따위를 한 부분 떼어서 남에게 넘겨줌.    우리말샘

집필자
이한상(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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