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 칠두령 ( )

선사문화
작품
국가유산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자리한 고분군 22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청동방울.
작품/조각·공예
창작 연도
5세기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현, 복천박물관 위탁 보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釜山 福泉洞 二十二號墳 出土 靑銅七頭鈴)
분류
유물/생활공예/금속공예/청동용구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9년 03월 06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 (복천동, 복천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자리한 고분군 22호분 으뜸덧널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청동방울이다. 원래는 길쭉한 나무자루가 끼워졌던 것으로 보이며 무덤 주인공의 제사장적 성격을 보여주는 의기(儀器)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방울 중 대다수가 말방울임에 비해 의기인 점이 특이하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복천박물관에 위탁 보관되고 있다.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자리한 고분군 22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의 청동방울.
제작 배경

청동칠두령은 의기(儀器)의 일종이다. 우리 역사에서 청동방울은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하였다. 당시의 지배자는 정치적 군장과 제사장의 역할을 겸하였는데 그들은 다뉴정문경, 한국식동검과 함께 여러 종류의 방울을 소유했다. 방울을 흔들 때 나는 소리가 하늘 혹은 신들과 감응하는 장치라 여겼다.

삼국시대가 되면 말방울은 많이 만들어졌으나 복천동 청동칠두령처럼 나무에 끼워 사용한 의기로서의 가지방울은 유례가 매우 드물다.

내용

이 청동칠두령이 출토된 부산 복천동 21 · 22호분은 으뜸덧널이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竪穴式石槨墓)]이고 딸린덧널[부곽(副槨)]이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인 주부곽식 무덤이다. 칠두령은 주곽인 22호분 내 남쪽에서 출토되었는데 잔존 흔적으로 보아 자루에 끼워진 채 무덤 주인공의 안치 방향과 평행하게 놓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무덤 주인공이 생전에 지녔던 제사장적 성격을 반영하는 의기에 해당한다.

형태 및 특징

이 칠두령은 청동제 주조품이다. 청동을 녹여 속이 빈 상태로 본체와 방울을 주조하였고, 둥근 고리모양 몸체에서 7개의 가지방울이 방사상으로 파출하고 아래쪽에 자루 결합부를 갖춘 형태이다. 자루 결합부에는 홈이 있어 길쭉한 나무자루를 끼울 수 있다. 방울 중앙에는 네 군데 씩 절개되어 있다. 전체 길이는 11.2㎝, 방울 포함 최대 너비는 11.0㎝이다.

의의 및 평가

이 청동칠두령은 삼국시대 유물 가운데 유례를 찾기 힘든 의기이다.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하였던 제사장의 상징물이 5세기의 부산 지역 유력자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국시대 각지의 유력자들이 여전히 제사장적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가야시대 의례와 청동 공예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의미가 크다. 2019년 3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복천박물관에 위탁 보관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동래복천동고분군Ⅱ』(부산대학교박물관, 1990)
집필자
이한상(대전대 교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