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4년(영조 20)에 편찬된 『속대전』에 나타나 있는 군선은 전선(戰船) 117척, 구선(龜船) 14척, 방선(防船) 76척, 병선(兵船) 161척, 사후선 318척, 기타 90척 등 모두 776척인데, 그 중 사후선은 41%를 차지한다.
조선 후기 군선의 편제는 대중소의 각종 군선을 혼합하여 각도 수영(水營) 산하 읍진(邑鎭)에 배치하되, 그 기본단위는 대형 전투함인 전선 1척, 소형 무장함인 병선 1척, 비무장 부속선인 사후선 2척이고, 필요한 경우 중형전투함인 방선 1척을 첨가하는데, 사후선은 전투함이나 무장선에 반드시 부속되는 비무장 소형정이었다.
이와 같은 부속정으로서 1555년(명종 10) 혁신적인 대형 전투함인 판옥선(板屋船)이 개발된 이래로 처음은 협선(挾船)이 중용되다가, 임진왜란 중에 사후선이 점차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후선의 정원은 타공(舵工) 1명, 격군(格軍) 4명 등 5명이고, 무장은 하지 않았으므로 전시에는 정찰 및 탐망(探望) 등에 활용되고, 평시에는 각 읍진의 잡용에도 충당되었다. 그러나 그 승원(乘員)은 물론이고 그 집물(什物) 등 일체는 전선에 직속되어 독자적인 활동은 어려웠다.
그 크기는 『전라우수영지』에 영광군과 함평현(咸平縣) 사후선의 치수로서 바닥의 길이 21척6촌, 너비 8척4촌과 8척8촌, 선체의 높이 4척 등이 나타나 있고, 『여암전서(旅菴全書)』의 논병선화차제비어지구조(論兵船火車諸備禦之具條)에는 바닥의 길이 24척, 너비 7척, 선체 높이 5척으로 나타나 있다. 사후선을 무장화하자는 의견도 때때로 대두되었으나 끝내 실행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