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

사회구조
개념
중세 이후, 산업 구조가 농림어업 중심에서 분업과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
이칭
이칭
공업화
내용 요약

산업화는 산업 구조가 농림어업 중심에서 분업과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변하는 현상이다.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증기 기관의 발명 같은 기술 혁신으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촉발되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대량 생산으로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빈부 격차도 커지면서 풍요로움과 함께 빈부 대립과 갈등, 환경 오염 등의 문제점도 발생하였다. 고속 성장에 따라 사회 문화적 변화도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고부가 가치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탈공업화 현상도 생기게 되었다.

정의
중세 이후, 산업 구조가 농림어업 중심에서 분업과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
산업화의 역사적 전개 및 내용

1769년 제임스 와트(James 주4가 증기 주7을 발명함으로써 촉발된 산업 주6을 본격적인 산업화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통상적이다. 동력을 생산하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면서 경제 활동을 비롯한, 인류의 생활 양식 전반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인류의 본격적인 경제 활동은 최초 농경 주12의 발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생산과 잉여물의 개념이 형성되고 잉여물의 교환이 확대되면서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발달한 도구의 사용에 따라 생산이 크게 증가하면서 문명의 발달이 도구의 개량에 크게 의존하게 되어 공업 부문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었다. 하지만 산업 주13 이전까지는 기술 개발의 속도가 낮고 생산성 증가의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주14 중심이라는 산업 구조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혁명이 가져온 분업과 기술 혁신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생산성 향상을 불러왔고, 이에 따라 제조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체제로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초기에는 제조업 중에서도 생활 필수품 위주의 주15 분야에서 발전이 선행되었으나, 점차 주16 분야의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고부가 가치 주18의 비중도 늘어났다. 특히 주19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생산 도구의 품질과 성능을 좌우하는 소위 자본재 주20이 중요시되었고, 제일 차 세계 주21과 제이 차 세계 주22을 거치면서 자본재 산업은 무기의 성능을 좌우하게 되었다.

산업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7~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 혁명이 일어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봉건 주23의 붕괴이다. 중세의 봉건 제도가 상대적으로 조기에 붕괴되면서 계층 간 이동이 시작되었고 이에 따라 주24을 고용할 수 있는 초기 주25적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개인에 의한 소규모 생산에서, 요소의 대량 투입에 의한 대규모 생산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둘째, 경제 정책의 변화이다. 농림어업 중심 정책에서 주27 정책으로 변환되면서 부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고, 자유주의적 경제 체제가 가능해졌다. 셋째, 철강 · 석탄 공업의 발달과 함께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운송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생산 요소 및 기술과 함께 제도적 여건까지 조기에 확립한 영국은 인도에서 싼값에 들여온 면직물을 대량으로 가공 주28을 하고 수출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남북 주29에서 상공인들의 비중이 높은 북군이 승리한 미국도 19세기 후반에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형성되었다. 또한 제일 차 세계 대전과 제이 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일본, 독일 등 주요 참전국들은 생산 능력을 급격히 팽창시키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수출을 지향하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산업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화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주1에 비해 생산성이 높은 주31 부문으로 생산 주32가 이동함에 따라 국가 전체 생산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둘째,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업 부문에 종사하던 인구가 공장 지대로 이동하여 제조업의 근로자로 전환되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새로운 기능과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및 직업 훈련 등 인력 양성이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었다. 셋째, 인력 공급이 용이한 지역에 대규모 공장들이 들어오고 도시화가 확산되었다. 전 세계 총인구에서 도시 인구의 비율이 2009년에 처음으로 50%를 주2 선진 산업 국가들의 도시화율은 75%, 후발 개발 주34들의 평균은 44% 수준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주택, 교통, 의료 등 다양한 사회 주35의 수요도 발생하였다. 넷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공장이 건립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공기와 물 등 자연환경이 오염되고 범죄와 전염병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문제들이 발생하여 삶의 질이 나빠지는 측면도 있었다. 다섯째, 산업화의 진전으로 경제 및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사회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빈부 격차가 확대되어 대립 구조에 따른 분배의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대두되면서 연금, 보험 등 새로운 사회 제도가 도입되고 확산되었다. 여섯째, 경제 사회 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변화도 초래하게 된다.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여성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증가했고, 가정에서 남녀 간 역할 분담도 바뀌었다. 이에 따라 외식 문화가 확산되는 등 가정과 사회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농업 부문의 고용 비중이 50%를 넘는 수준에서 20% 이하로 줄어드는 시기를 산업화로 주3, 덴마크,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초기 산업 국가들은 산업화에 100년 전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벨기에, 노르웨이, 독일, 미국 등은 산업화에 50~75년 정도가 걸렸고, 반면 대만, 말레이시아 등 후발국들은 30년 이내에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한국은 19년 만에 산업화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업화는 경제 성장을 통해 소득 수준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 문화적으로도 광범위한 변화를 촉발하였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함께 인구의 도시 집중화, 핵가족화, 환경오염 등 중세 이후 새롭게 부각된 주요 문제들이 산업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산업화

한국에서 산업화의 시작을 주37 또는 일제강점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본격적인 산업화는 군사 정부가 경제 개발 오 개년 주38을 추진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63년 한국 정부는 경제 개발 오 개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정부 주도의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당시 축적된 자본 없이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외국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생산 요소의 분배는 물론 주40의 도입과 배분까지 산업화 과정의 전반을 정부가 주도하게 되었다. 민간 주41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위 산업 정책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시행했고, 좁은 국토 면적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산업용 토지의 배분까지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이루어졌다. 산업화의 핵심 요소인 인적 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교육 훈련 제도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경제개발계획의 초기부터 독일식 직업 훈련 제도를 모방하여 기능 인력을 양성하였고 1982년 한국 산업 인력 주43을 설립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직업 훈련 및 지원을 실시하였다. 이는 국민적 교육열과 맞물려 단기간에 산업화를 달성한 것은 물론 사회 문화적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산업화 진전 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초기에는 생활 필수품 공급과 국산화 및 수출 산업화가 용이한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화를 이루었고,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부가 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화의 축을 전환하였다. 초기 산업화를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룬 후, 1980년대 초중반과 1990년대 후반 두 차례의 외환 주44를 겪었으나 오히려 한국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인 대규모 산업 구조 재편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산업 경제는 보다 선진화되고 글로벌화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기술 집약적 산업을 육성하는, 산업 전반에서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다. 소득 향상과 더불어 서비스 분야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유학 및 해외여행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발생한, 서비스 분야의 만성적인 무역 적자도 점차 감소하였다. 최근에는 K-Culture를 비롯한, 문화 상품의 경쟁력 향상에 힘입어 선진 서비스 산업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표 1>한국의 소득증가 추이 차트: 한국의 소득증가 추이(1960년 ~ 2021년)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이처럼 한국은 성공적인 산업화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1960년 20억 달러 수준이었던 국민 총소득의 수준은 2021년 1조 8,304억 달러로 증가하여 61년 만에 915배 증가하였다. 달러 표시 국민 소득이 연평균 11.8%씩 증가한 셈이다(<표 1> 참조).

<표 2> 한국의 산업 구조 변화(부가 가치 생산 기준: 명목)

자료: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

이 같은 산업화의 진행을 산업 구조 변화 측면에서 살펴보면, 경제 개발 오 개년 계획이 시행되기 직전인 1960년 전 산업 부가 가치 생산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14.7% 수준에 불과하였으나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1970년에 20%를 넘었고 1987년에 30%를 넘어서면서 제조업 강국으로 변신하였다. 최근까지도 제조업의 부가 가치 생산 비중은 30% 전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농림어업 부문의 생산 비중은 1960년 39.3%에서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1988년에 10.2%에 이르렀고 현재는 4.3%에 불과하다(<표 2> 참조).

<표 3> 산업별 취업 구조 변화(단위:%)

자료: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

산업화에 따른 산업 구조의 변화는 고용을 기준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전 산업 취업자 가운데 제조업 취업자의 비중은 1960년대 초 8.7%에서 1980년에 22.5%로 증가하였고, 1990년에는 27.6%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후 임금 상승과 기술 발전 등으로 산업 자동화와 고부가 가치화가 확산되면서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0년 제조업 취업의 비중은 점차 감소하여 20.4%, 2010년에는 17.1%로 줄어들었다. 한편, 농림어업 분야 취업자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어 1960년대 초 62.9%에서 1980년 34%로 급격히 감소하였고, 2000년에는 10.7%, 2021년에는 5.3%에 불과하다.

이처럼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생산 기준 또는 취업자 기준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농림어업의 비중이 감소하는 전형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으나(<표 3> 참조), 2000년대 이후에는 저임금 제조업과 농림어업 분야를 중심으로 주48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근로자들은 취업난을 호소하고 기업은 주49에 허덕이는, 고용 시장의 미스매치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산업화와 한국 사회의 변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도 일반적으로는 앞선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슷한 변화 양상을 보이지만, 단기간에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루어 낸 결과로 보다 극단적인 현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급속한 소득 증가와 더불어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극단적인 노사 주51를 경험하였다. 1960~70년대 산업화 초기에는 정부의 노사 주53 억제 정책의 영향으로 외형상 안정된 노사 주52를 보였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정치적 주54의 욕구가 확산된 것에 힘입어 근로 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연간 노사 분규 건수가 1980년대 초 50건 미만이었으나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과 함께 1980년대 중후반에는 2,000건을 넘을 정도로 급증하였고 1987년에는 3,700건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1997~1998년 외환 위기를 경험하면서 한자리 수로 감소하였고 최근에는 근로 시간의 단축 등 근로 환경이 개선되면서 2018년 134건, 2019년 141건으로 줄었다.

농촌 인구의 대도시 유입이 지속되고 지역 개발이 확대되면서, 도시화율도 빠르게 높아졌다. 우리나라 인구의 도시화율은 1955년 24.4% 수준에서 1975년 48%를 넘었고 1995년 78.2%를 넘어 2020년에는 81.9%로 증가하였다. 급격한 도시화로 사회 간접 주55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고, 주택난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 부족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삶의 주56 저하 현상도 초래되었다.

공업 부문의 인력 수요가 늘어나고 서비스 분야의 팽창에 따라 여성 인력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1995년 48.4%에서 2005년에는 50.3%로 늘어났으며, 2015년 51.9%, 2021년 53.3%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는 늘어나는데도 제반 사회 여건이 이를 따르지 못하고 정부 정책의 전환이 늦어지면서 결혼 및 출산이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가임 주57의 출산율을 나타내는 합계 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 달했으나,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1970년 4.41명, 1980년 2.72명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고 1983년에는 총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 이하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조기 대응하지 못했고 1996년까지 주58인 출산 억제 정책을 유지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을 폐기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2018년에 1.0명 이하로 줄었고 2021년에는 세계 최저 수준인 0.81명을 기록하여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는 물론 총인구 감소까지 우려되는 인구 주59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고급 인력 양성 정책 역시 우리 산업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으나, 이후 사회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1980년 27.2% 수준이었으나, 고학력 선호 사상과 대학 졸업 주60 도입 등으로 1990년 33.2%로 늘어났으며, 대학 설립 자율화 정책으로 대학 정원이 크게 늘면서 2000년 68%로 급증하였고, 2008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83.8%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고학력화로 인해 제조업 부문에 필요한 젊은이의 인력 풀이 줄어들어 산업 인력난이 심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이 진학률도 73.7%로 현저히 줄어들어 고학력화가 다소 완화되고 있으며, 그 대신 외국 인력의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산업화를 통해 세계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압축적 단기 성장의 결실을 거두었고, 국력 주61과 함께 국민 생활 전반의 비약적 향상을 이루어 냈다. 이에 따른 부작용 또한 여타 산업화 선도 국가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나, 경제 분야에서는 첨단 주63과 문화 주64의 발전 등 새로운 시장의 개척, 사회 문화 분야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성숙한 발전 등을 통해 한국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Todaro, Michail P. and Smith, Stephen C., Economic Development(11th edition)(Addison Wesley, 2010)
Sakong, Ill and Koh, Youngsun (eds), The Korean Economy: Six Decades of Growth and Development(KDI, 2010)
『한국경제 60년사』(KDI, 2011)
『한국 산업 발전 비전 2030』(산업연구원, 2019)

인터넷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http://kosis.kr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 http://ecos.Bok.or.kr
주석
주1

산업분류는 대분류 중심이다. 1차 산업군에서 임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고, 2차 산업에서도 1970년대를 넘으면 광업의 비중이 매우 적어서 통계적으로 무의미하며, 제조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2

UN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도시화율은 2020년에 51.7% 수준임.

주3

KDI, 『한국경제60년사』, 2011 참조.

주4

영국의 기계 기술자(1736~1819). 증기 기관을 발명ㆍ제조하여 산업 혁명의 기술적 원인을 조성하였다. 우리말샘

주6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생산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조직의 큰 변화. 영국에서 일어난 방적 기계의 개량이 발단이 되어 1760~1840년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계속 일어났다. 수공업적 작업장이 기계 설비에 의한 큰 공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었다. 우리말샘

주7

보일러에서 보낸 증기의 팽창과 응축을 이용하여 피스톤을 왕복 운동시킴으로써 동력을 얻는 기관. 우리말샘

주12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우리말샘

주13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생산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조직의 큰 변화. 영국에서 일어난 방적 기계의 개량이 발단이 되어 1760~1840년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계속 일어났다. 수공업적 작업장이 기계 설비에 의한 큰 공장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었다. 우리말샘

주14

농업, 임업, 어업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5

부피에 비하여 무게가 가벼운 물건을 만드는 공업. 섬유 공업ㆍ식품 공업ㆍ고무 공업 따위의 소비재 산업이 중심이며, 소자본으로도 가능하다. 우리말샘

주16

중화학 공업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8

고부가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산업 분야. 우리말샘

주19

부피에 비하여 무게가 비교적 무거운 물건을 만드는 공업. 제철업, 조선업, 기계 제조업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0

생산 기계나 원자재 따위의 생산 수단을 만들어 내는 산업. 우리말샘

주21

독일ㆍ오스트리아ㆍ이탈리아의 삼국 동맹과 영국ㆍ프랑스ㆍ제정 러시아의 삼국 협상이 대립하여 일어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 1914년 7월에 사라예보 사건을 도화선으로 하여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고, 오스트리아를 후원하는 독일이 세르비아를 후원하는 제정 러시아ㆍ프랑스ㆍ영국과 개전하여 시작되었다. 일본ㆍ루마니아ㆍ그리스ㆍ이탈리아가 삼국 협상 쪽에, 오스만 제국ㆍ불가리아가 삼국 동맹 쪽에 참전하여 세계 전쟁으로 확대되었는데, 1918년에 독일이 항복하고 이듬해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끝났다. 우리말샘

주22

세계 경제 공황 후, 파시즘 체제에 있던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 등의 군국주의 나라와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의 연합국 사이에 일어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시작되어 독일과 소련의 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1943년 9월에 이탈리아, 1945년 5월에 독일, 1945년 8월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끝났다. 우리말샘

주23

천자가 여러 제후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어, 제후가 각자의 영유 지역에 대하여 전권(全權)을 가지는 국가 조직. 중국 주나라의 국가 체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후는 왕실을 종가(宗家)로 받들며 공납과 부역을 부담하였다. 우리말샘

주24

유럽의 봉건 사회에서, 영주에 대하여 부역의 의무를 지지 아니하였던 농민. 토지를 가지고 있으며, 영주와 계약 관계를 가지고 화폐 및 현물로 지대(地代)를 내었다. 우리말샘

주25

수공업적 경제 체제가 근대 자본주의로 옮아가는 과도기의 경제 체제. 유럽에서는 대략 15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가 해당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좀바르트가 처음 사용하였다. 우리말샘

주27

상공업을 중시하고 국산품의 수출을 장려하는. 또는 그런 것. 우리말샘

주28

원자재나 반제품을 처리하여 질을 바꾸거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일. 우리말샘

주29

미국에서, 노예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와 존속을 주장하는 남부 사이에 일어난 내전. 1860년에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여러 주가 연방을 탈퇴하고 이것을 계기로 전쟁이 벌어졌는데 남부가 1865년에 항복함으로써 합중국의 통일이 유지되고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다. 우리말샘

주31

물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사업. 우리말샘

주32

생산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 대개 노동, 토지, 자본을 생산의 삼 요소로 본다. 우리말샘

주34

개발 도상국 중에서도 발전이 뒤떨어지는 나라. 우리말샘

주35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조물. 도로, 항만, 철도, 발전소, 통신 시설 따위의 산업 기반과 학교, 병원, 상수ㆍ하수 처리 따위의 생활 기반이 있다. 우리말샘

주37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개혁되어 가던 시기. 우리말샘

주38

우리나라에서 국민 경제를 계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5년 단위로 시행한 경제 계획. 제1차(1962~1966), 제2차(1967~1971), 제3차(1972~1976), 제4차(1977~1981)까지 시행되었다. 우리말샘

주40

‘외국 자본’을 줄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41

관청이나 정부 기관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의 자금. 우리말샘

주43

고용 노동부에 소속된 특수 법인의 하나. 1987년에 한국 직업 훈련 관리 공단을 고친 것으로, 산업 인력의 개발과 기술 교육 및 인력 배분을 효율적으로 전담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우리말샘

주44

대외 경상 수지 적자로 외환 보유고가 크게 줄어들고 단기 투기성 외화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되어, 대외 거래에 필요한 외환을 확보하지 못하고 외환 시장에서 환율이 급등하는 현상.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에 외환 위기를 겪었으며, 국제 통화 기금의 지원을 받아 고비를 넘겼다. 우리말샘

주48

능숙하게 익힌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업이나 직무. 우리말샘

주49

노동력이 부족하여 겪는 어려움. 우리말샘

주51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 우리말샘

주52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노동력 수요자로서의 사용자가 형성하는 이해관계. 우리말샘

주53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 우리말샘

주54

정치적인 면에서 강압적인 통치 수단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정 수행이 민주적으로 되어 가는 것. 또는 그렇게 되게 하는 것. 우리말샘

주55

국민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는 도로, 항만, 철도, 통신, 전력, 수도 따위의 공공시설. 우리말샘

주56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가치, 의미, 만족의 정도. 보통 개인이나 사회의 일반적인 참살이에 대한 생각을 평가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정신적인 상태, 스트레스의 정도, 성기능,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건강 상태 따위를 기준으로 한다. 우리말샘

주57

임신이 가능한 여자. 우리말샘

주58

실속은 없고 이름이나 구실만이 갖추어져 있는. 또는 그런 것. 우리말샘

주59

생산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 우리말샘

주60

대학에서, 입학 정원 이상을 뽑고 졸업 시험을 통하여 제한된 정원만을 졸업시키는 제도. 우리말샘

주61

세력이나 권리 따위가 늘어남. 또는 늘어나게 함. 우리말샘

주63

기술 집약도가 높고, 관련 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큰 산업. 항공기, 우주 개발, 전자, 원자력, 컴퓨터 따위 첨단적 기술을 중핵으로 하는 산업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64

문화 생산물이나 서비스를 상품으로 생산하여 판매하는 산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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