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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항석(徐恒錫)

연극인물

 일제강점기 중앙국립극장장,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한 학자.   극작가·친일반민족행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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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중앙국립극장장,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한 학자.극작가·친일반민족행위자.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00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했다. 1914년 홍원 모산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중성학교 고등보습과를 수료한 후 보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1917년 졸업했다. 같은해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1918년 졸업 후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중학부에 편입하여 1920년 졸업했다. 1922년 센다이[仙臺] 제이고등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1925년 졸업 후 1926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독일문학부에 입학하여 1929년 3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정치부기자로 활동하다가 1933년 학예부장이 되었다. 대학시절부터 독일희곡에 심취했던 그는 연극에 뜻을 두고, 1931년 유치진·홍해성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를 조직했다. 극예술연구회 조직에 주도적 역할을 한 그는 창립공연작품인 「검찰관」(고골리 작)에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고, 제3회 공연작품인 「우정」(카이젤 작)을 번역했다. 1935년 「소」(유치진 작)를 연출한 이후 연출활동도 했다. 1937년에는 영화제작을 준비하여 극예술연구회 내에 영화부를 설치했다. 1938년 삼영영화사를 설립하여 「애련송」을 제작했다.
1941년 유치진·함대훈과 함께 '국민연극'을 표방하면서 극단 현대극장을 창립하였다. 극단 창립 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문화부장 야나베 나가사부로(矢鍋永三郎)와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사무관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는 등 일제의 침략정책에 적극 참여했다. 1942년 일제가 주도한 분촌운동을 선전하고 만주 이민을 장려한 연극인 「대추나무」를 연출하여 연극경연대회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또한 1941년 7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지휘한 조선연예협회 산하 단체인 작가동호회 회장이 됐으며, 1942년 1월에는 조선연예협회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1942년 7월 조선연예협회와 조선연극협회가 통합하여 조직된 조선연극문화협회의 이사에 선임되었다.
해방 이후, 국립극장 설립에 앞장섰으며, 피난지 대구에서 제2대 극장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중앙국립극장장, 1955년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최고위원, 시나리오분과 위원장, 1957년 예술원 회원, 1960년 국악원 이사장, 1964년 연극협회 이사장, 1978년 예술원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인 최로로 1970년 독일정부로부터 괴테훈장을 수여받았다. 1985년 9월 27일 사망했다.
서항석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303∼319)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서울특별시 문화상, 예술원상, 건국문화훈장, 국민문화훈장 모란장, 1970년 독일정부로부터 괴테훈장을 수여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유민영
개정 (2016년)
조성운(경기대학교 사학과)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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