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명칭은 놀이로 되어 있으나, 소리가 주종목이다. 수영은 1671년(현종 12)부터 1894년 갑오경장까지 경상좌도수군절도영이 있던 곳이며, 수영강을 끼고 해변에 자리잡은 대집단공동체의 자연마을이었다.
8·15 당시만 해도 98%가 농민이었으나, 지금은 1가구의 농가도 없이 도시화되었다. 수영사람들은 100여 년 전부터 공동작업을 조직적이고 능률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농청이 1960년대까지 존속했다고 하지만, 그 연원을 삼한시대 두레의 유풍이라 생각하면 고대로 소급될 것이다.
농청원은 노동력이 있는 남녀로 구성되는데, 남자는 중노동을 위주로 하며, 내방청원(內房廳員)은 밭농사를 중심으로 하되, 모내기철에는 모찌기와 모심기에 동원된다.
집단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그 규율은 엄하므로, 만일 어기면 곤장으로 다스리고 심하면 추방했다고 한다. 수영농청놀이는 모찌기 · 모심기 · 논매기 등 농요가 주이고, 여기에 보리타작소리와 소싸움이 첨가된다.
① 모찌기노래:1행이 3∼4음절 4구로 된 2행시가 한 토막을 이루고, 선 · 후창으로 분창하니 선창은 독창이고 후창은 제창이다. (선) “일월이 돋아와도……” (후) “매화대를 꺾어들고 ……”
② 모심기노래:모찌기와 같이 주로 내방청원이 담당한다. 3∼4음절 4구 1행이 앞뒤로 이어진다. (선) “이논에다 모를심아 ……” (후) “우리부모 산소등에 ……” 모내기소리는 아침 · 중참 · 점심 · 후참 · 석양 등에 따라 가사와 가락이 달라진다.
③ 김매기노래:논김을 매는 남자들의 소리이다. 북을 세 번 울리면 일제히 “에이 에이”를 두 번 하고, 앞소리가 “에― 헤― 아― 아” 라 하면 뒷소리도 그같이 하는데 후창의 가사는 동일하다.
④ 보리타작소리:수영지방에서는 이모작이 가능하므로 보리타작을 모내기와 동시에 한다. 가락은 1음보격으로 단조롭다. (선) “어화” (후) “어화”(이하 동) (선) “때려라. ……” 모든 작업을 마치면, 동 · 서부로 나뉘어 소싸움을 하며 판굿으로 끝맺는다.
수영농청놀이는 도시화된 고장에서 농요를 들을 수 있으며, 한편 사용되는 기구 · 의상 · 도구 등은 민속자료로 전승될 것이다. 1972년 10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