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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산계(殖産契)

    근대사개념용어

     일제강점기 「식산계령」에 따라 농촌금융조합과 조합원을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경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조직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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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식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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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근대사
    유형
    개념용어
    시대
    근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식산계령」에 따라 농촌금융조합과 조합원을 효과적으로 연계시켜 경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조직한 계.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계원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주사·부주사가 계의 업무를 관장하고, 금융조합의 이사가 감사가 되어 그 운영과정을 감독하였다.
    1935년 농촌금융조합의 증설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그 필요성이 계속 증대되어 1944년 11월 무렵에는 그 수가 4만 7000여 개에 달하여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기에 이르렀다. 식산계는 금융조합의 지시에 따라 생산물의 공동판매와 생필품의 공동구입을 도모하는 한편, 농산물 창고를 공동시설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농업생산을 위한 협동작업과 작부(作付) 농작물의 품종개량을 위한 공동채종전(共同採種田)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식산계는 금융조합이 담당한 중대기능의 하나인 농촌지도사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격화되어감에 따라 식산계는 본래의 목적에서 일탈하여 전쟁자금의 조달을 위한 저축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말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사』 21(국사편찬위원회,1984)

    • 『한국금융사연구(韓國金融史硏究)』(고승제,일주각,1970)

    • 『朝鮮金融組合の現勢』(朝鮮金融組合聯合會,1937)

    • 「朝鮮金融組合の機能と構造」(秋定嘉和,『朝鮮史硏究會論文集』 5,1968)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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