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주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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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익
엄주익
인물
대한제국기 법부현판, 양정의숙이사장, 군부협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교육자.
이칭
이칭
춘정(春庭)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2년(고종 9) 6월 26일
사망 연도
1931년
본관
영월(寧越)
출생지
서울
목차
정의
대한제국기 법부현판, 양정의숙이사장, 군부협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72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고종의 두 번째 비인 엄비의 조카이다. 1900년에 통신원전화과 주사를 시작으로 1901년에 내장원종목과장, 1902년에 군부 포공국장·한성부판윤, 1903년에 군부협판, 1904년에 법부협판·육군참장·군부협판·군부대신서리, 1905년 평리원재판장·적십자사부사장, 1906년 육군법원장, 1907년 봉상사제조 등을 지냈다. 1904년 군부협판으로 있을 때 근대적인 군사제도를 시찰하기 위해 일본을 시찰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 교육의 보급이 국가 발전의 핵심적인 사업임을 깨닫고 귀국했다. 이후 안종원(安鍾元)·이철우(李哲宇)·윤정석(尹晶錫)·박용숙(朴容淑)·장현주(張炫周)·김진현(金鎭賢)·한만용(韓晩容) 등과 함께 양정의숙(養正義塾)의 설립을 추진했다.

1905년 2월 올바르게 길러서 깨우쳐준다는 ‘몽이양정(蒙以養正)’의 기치 아래 기부금과 사재로 양정의숙을 설립, 숙장(塾長)에 취임했고, 1907년에는 엄비(嚴妃)로부터 200만여 평의 토지를 하사받아 학교 발전의 토대로 삼았다. 양정의숙을 설립한 후에 교육부총감사무서리·군부대신서리·평리원재판장·적십자사부사장·육군법원장·궁내부특진관 등 관계의 요직에 있었다.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사망할 때까지 일체 관계를 떠나서 교육사업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1913년 재단법인 양정의숙 이사장, 같은해 10월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장에 선임되었다. 1923년 조선체육회 이사로 활동했다. 1931년 사망했다.

참고문헌

『한국근대교육사』(손인수, 연세대학교출판부, 1975)
『대한제국관원이력서』(1972)
『양정의 얼굴』(양정중고등학교, 1965)
『조선신사보감』(1914)
『개벽』42(19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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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조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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