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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관(靈觀)

불교인물

 조선전기 신총에게서 불경을 배우고 위봉에게서 참선을 배운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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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부용(芙蓉), 은암(隱庵), 연선도인(蓮船道人)
분야
불교
유형
인물
성격
승려
성별
출생일
1485년(성종 16)
사망일
1572년(선조 1)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신총에게서 불경을 배우고 위봉에게서 참선을 배운 승려.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선승(禪僧). 경상남도 사천 출신. 호는 부용(芙蓉) 또는 은암(隱庵). 연선도인(蓮船道人)이라고도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와 활동사항
8세 때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면서 어람을 들고 다니게 하였더니, 살아 있는 물고기를 모두 놓아 주었다. 1498년(연산군 4) 몰래 출가하여 덕이산(德異山)에 들어가서 고행하는 선자(禪者) 밑에서 3년 만에 그 법을 배운 뒤 삭발하고 중이 되었다. 1501년신총(信聰)에게서 불경을 배우고 위봉(威鳳)에게서 참선을 배웠다.
그 뒤 구천동에 들어가서 초암을 짓고 9년 동안 머물렀는데, 항상 앉아서 눕지 않았고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았으며, 바깥출입을 일체 하지 않았다. 1509년(중종 4)용문산(龍門山)조우(祖愚)의 밑에서 참선하면서 『노자』와 『장자』를 통달하였고, 1514년 청평산(淸平山) 학매선자(學梅禪子)를 만나 현묘한 뜻을 문답하였다.
1519년 금강산세존암(世尊庵)에서 조운(祖雲)과 함께 2년을 안거한 뒤 내원암(內院庵)에 들어가 율시 한 수를 짓고, 붓과 벼루는 불에 태운 뒤 묵언정진하며 9년을 지냈다. 1530년 가을에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 아버지와 옛 주인을 만난 뒤 다시 지리산의 지엄(智嚴)을 찾아갔다. 지엄의 가르침으로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였던 마음속의 의문을 풀었다.
3년 동안 지엄을 모시고 수행한 뒤 황룡산(黃龍山)·팔공산(八公山)·대승동(大乘洞)·의신동(義信洞)·연곡동(燕谷洞) 등에서 40여 년 동안 후학을 지도하다가 나이 87세, 법랍 72세로 입적하였다. 제자 법융(法融)·영응(靈應)·대선(大禪) 등 8인이 영골(靈骨)을 거두어서 연곡사(燕谷寺) 서쪽 기슭에 부도(浮屠)를 세웠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휴정(休靜)이 있다. 휴정이 쓴 행록을 통하여 단편적으로나마 그의 격외선(格外禪)의 도리와 불법관(佛法觀)을 살필 수 있다. 의리를 밝게 분석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고, 칠요(七曜)·구장(九章)·천문(天文)·의술(醫術)에 통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며, 유가와 도가에도 통달하였다. 항상 조사(祖師)의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하게 하여 활연히 깨닫는 것으로써 입문하게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청허당집(淸虛堂集)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 이능화 ,신문관,1918)

  • 李朝佛敎  (高橋亨, 寶文館, 192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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