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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경(吳子慶)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내금위장, 평안중도절도사, 대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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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내금위장, 평안중도절도사, 대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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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길보(吉甫). 처음 별시위(別侍衛)에 속해 있다가 1454년(단종 2) 무과에 합격하여 내금위로 옮겨 북방군관(北方軍官)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세조의 즉위를 도와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1년(세조 7) 첨지중추원사에 발탁되고 이어 함길도도진무(咸吉道都鎭撫)·경원부사를 역임하였다. 1466년 무과중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등준시(登俊試) 무과에 장원하여 가정대부(嘉靖大夫)에 오르고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1467년 5월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내금위장(內禁衛將)으로서 구성군 이준(龜城君 李浚)의 막하에 들어가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보산군(寶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五衛將)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평안중도절도사(平安中道節度使)가 되었으며 1469년(예종 1)보산군에 다시 봉해졌다.
1473년 집을 수리하는 데 목공이 오지 않는다고 잡아다 장살한 혐의로 관직과 공신전을 삭탈당하고, 전주로 귀양갔다가 공주로 부처되었다. 1475년 귀양에서 풀려났으며, 이듬해 직첩을 돌려받고 다시 보산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차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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