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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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개념
원자번호는 16이고 원자량은 32.06이며 원소기호는 S로 표시되는 비금속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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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원자번호는 16이고 원자량은 32.06이며 원소기호는 S로 표시되는 비금속원소.
내용

녹는 점은 120℃, 비중은 1.92이다. 상온에서는 황색, 무취의 파삭파삭한 결정체이며, 고온에서는 금과 백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금속이나 수소와 화합하여 황화물을 만든다. 점화하면 청색의 불꽃이 생기며, 화약과 성냥의 원료, 약용·농약·펄프 제조 등에 쓰인다.

이렇게 현대생활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유황은 옛날부터 수은과 더불어 동양연금술(東洋鍊金術)에서 가장 필요한 성분 중의 하나였고, 또 일찍부터 화약 제조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모아 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허준(許浚)의 ≪동의보감≫과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서종박물고변 五洲書種博物考辨≫에서 유황의 제법과 용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유황(硫磺, 硫黃, 流黃)은 때로는 유(硫)·석류황(石硫磺)·황요사(黃硇砂)·황아(黃芽)·석류적(石硫赤)이라고도 불렸다. 묽은 유황은 석정지(石亭脂)·석류월(石硫月)·석류지(石硫芝) 등으로 알려졌고, 검은 유황은 석류청(石硫靑)·동결석(冬結石)·매요자(煤腰子)로 알려졌다. 붉은 유황을 석정지라고 불렀던 이유는 유황가루에 지방질 물질을 섞어서 썼기 때문이다.

≪오주서종박물고변≫에 나오는 유황의 제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가마를 만드는데, 진흙을 굴(窟)과 같이 둥글고 휘어지게 쌓고 그 가운데에 땅을 파고 빈 질그릇 항아리[陶缸]를 묻는다. 채굴한 유황석을 다른 질그릇 항아리에 담고 솔잎으로 입구를 막는다.

빈 항아리를 묻은 위에 유황석이 담겨 있는 항아리를 서로 입구가 잘 합해지도록 올려 놓고 불을 때어 곤다. 일주기(一周期)를 기다려서 꺼내 보면 유황액(硫磺液)이 밑의 항아리로 흘러 들어가 있다. 응고되기를 기다려 항아리를 깨뜨려서, 꺼냈을 때 납(蠟)과 같이 색이 노란 것이 가장 좋다. 유황석이 다 용화(鎔化)되지 않았으면 다시 불로 달군다.”

이렇게 유황 액체를 받아 결정체로 만드는 방법은 중국 명대의 송응성(宋應星)이 저술한 ≪천공개물 天工開物≫에 나타난, 유황 기체를 위에서 모아 액체화시켰다가 다시 결정체로 만들었던 방법과는 다르다.

이규경은 유황의 제법 외에 유황이 생산되는 곳과 유황의 용도도 기술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금성(金城)·수안·경주·경성(京城)과 과천의 관악산(冠岳山), 청풍(淸風)의 학암(鶴巖), 단양 북쪽의 황점곡(黃店谷) 등에서 산출되는데, 다 헤아려 기록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당시에 유황의 생산지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황은 서양 각 처에서 나며 일본에서 나는 유황의 품질이 좋다고 하였다. 금·은·동·철 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인 유황은 술잔과 그릇 종류의 여러 물품을 만드는 데 매우 묘한 역할을 한다. 무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 물질을 빌려서 여러 종류의 화약을 만들고, 초자(砂子)·호박(琥珀)·영사(靈砂)·은주(銀朱)·황단(黃丹) 등의 기이한 물건은 유황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용도 외에 이규경은 성냥의 신기함을 “근래에 연경(燕京)으로부터 서양 유황이라고 불리는 것이 들어왔는데, 뾰족하게 만 종이조각 끝에 유황을 바른 것이다. 색이 붉고, 벽 위나 옷자락, 나무나 돌 위 등에 그을지라도 불이 일어나니 역시 신기한 종류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동의보감≫에는 “유황은 성(性)이 대열(大熱)하고 맛이 시고 독이 있으며, 심복(心腹)의 적취(積聚 : 체증이 오래되어 덩어리가 지는 병)와 사기(邪氣 : 부정한 기운)의 냉벽(冷癖) 등을 다스리고 근골(筋骨)을 굳세고 장(壯)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유황이 우리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많이 제조되고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동의보감(東醫寶鑑)』
『오주서종박물고변(五洲書種博物考辨)』
『천공개물(天工開物)』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Needham, Joseph, ed. , Cambridge, England, 1976)
A Compendium of Minerals and Stones:Used in Chinese Medicine from the Pen T’sao KangMu
Lishih Chen, 1597 A. D. (B.E. Read and C. Pak, The Peking Society of Natural History,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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