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태시(泰始), 호는 낙촌(洛村). 이준경(李遵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희복(李熙復)이다. 아버지는 공조참의 이윤우(李潤雨)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로 생원 채응린(蔡應麟)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0년(인조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곧 승문원권지정자로 등용되었다. 그 뒤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주서 등을 지내다가, 1634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사임하였다. 1636년 다시 주서로 복직하고, 그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637년 검열이 되었고, 이어서 봉교가 되었다가 지평으로 승직하였다. 1638년 교리를 거쳐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에, 청나라에서 요청하여온 군사의 파견을 앞장서서 막았다.
그 뒤 수찬을 지내고, 외직인 합천군수로 나갔다가 관직을 사임하였다. 그 뒤 응교·사간 등으로 임용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