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정사공신 1등, 좌명공신 1등 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칭
시호
경숙(景肅)
이칭
백경(伯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63년(공민왕 12)
사망 연도
1414년(태종 14)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겸판승추부사(兼判承樞府事)|의정부찬성사
관련 사건
1차 왕자의 난|2차 왕자의 난
정의
조선전기 정사공신 1등, 좌명공신 1등 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이백경(李伯卿)이었으나, 이름의 음(音)이 정종의 휘(諱) 경(曔)과 비슷하다 하여 이저(李佇)로 개명하였다. 그 뒤 그 이름 또한 세자(양녕대군)의 휘 제(禔)와 음이 비슷하여 또다시 이애(李薆)로 개명하였다. 영의정이며 개국·정사공신(開國定社功臣)인 이거이(李居易)의 아들이다. 태조의 맏딸인 경신공주(慶愼公主)의 남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98년(태조 7)에 아버지와 함께 이방원(李芳遠: 뒤의 태종)을 도와 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어 상당후(上黨侯)가 되었고, 영완산부사(領完山府事)로 있으면서 사병(私兵)을 모으고 부도(不道)한 언동을 한 죄로 1400년(정종 2) 사장(私莊)에 안치되었다가 풀려났다.

1401년(태종 1)에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협력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402년에 겸판승추부사(兼判承樞府事)·의정부찬성사가 되었고, 1404년에 아버지 이거이의 죄로 이애도 함주(咸州)로 유배되었다. 이듬해에는 이천·임강(臨江) 등지로 옮겨졌다가, 고향인 진천(鎭川)에 살도록 자원안치(自願安置)되었다. 그 뒤 1424년(세종 6)에 관작이 회복되었다. 시호는 경숙(景肅)이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정종실록(定宗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집필자
이재범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