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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선(李寅善)

    현대음악인물

     일제강점기 동양 제일의 테너라는 호평을 받은 성악가.   오페라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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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동양 제일의 테너라는 호평을 받은 성악가.오페라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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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07∼1960. 평양 출신. 감리교 목사 익모(益模)의 차남이다.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부터 미국 선교사에게서 피아노와 성악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성악은 선교사 부스 여사의 지도로 동생 유선(宥善)과 함께 공부하였다. 연희전문 2년간 수학 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전입하였으며, 재학중 서울에서 음악회에 독창자로 자주 출연하였다.
    졸업 후 황해도 황주에서 개업했다가 1934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 한국 성악가 제1호로 세계적 테너 스키파(Schipa,T.)의 은사 체키(Chechi)의 문하생으로 수업하였다. 밀라노에서 더욱 오페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1937년 귀국하여 서울부민관(府民館), 일본 동경 히비야공회당(日比谷公會堂), 중국 칭다오(靑島) 등지에서 독창회를 열어 동양 제일의 테너라는 호평을 받았다.
    성악만으로는 생계가 되지 않자 함경남도 성진에서 개업의로 있다가 8·15광복과 더불어 상경하였다. 1946년 말경부터 동생 유선과 제자들(박승유·김자경·송진혁·김영순 등)과 함께 국제 오페라사를 조직, 1948년 1월 16∼20일 베르디의 「춘희」로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하게 되었다.
    다음해인 1949년 4월에는 비제의 「카르멘」을 공연하였다. 이로써 그는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가 되었고, 많은 이탈리아 가곡을 번역, 출판하여 성악도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카르멘」공연이 끝난 뒤 5월경 미국 내슈빌종합병원으로 연구차 가는 도중에 동경과 하와이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1951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오디션에 동양인으로 첫 합격자가 되었으나 경제적 여건으로 출연을 연기하였다. 의학을 계속 연구하는 한편 성악도 중단하지 않았다. 한편 개업을 위한 준비 등 피곤이 겹치고 한국에서 앓던 간질환이 재발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양악백년사(韓國洋樂百年史)』(이유선,음악춘추사,198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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