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인평대군(麟枰大君)

회화인물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왕자.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인평대군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제16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왕자.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 인조의 셋째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으로, 1628년 7세 때 인평대군(麟坪大君)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심양(瀋陽)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이후, 165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시서화(詩書畫)를 잘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백가에도 정통하였던 그는, 1645년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내조(來朝)하였다가 3년 뒤에 본국으로 돌아간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내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희귀한 편으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산수도」, 홍성하(洪性夏) 소장의 「노승하관도(老僧遐觀圖)」, 정무묵(鄭武默) 소장의 「고백도(古栢圖)」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고백도」는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로 다루어져 있어 맹영광의 공필법(工筆法)과 상통하는 바 크며, 「산수도」의 다소 거치른 필치 등은 절파풍(浙派風)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 이외에 『송계집』·『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의 저서를 남겼다.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잠곡유고(潛谷遺稿)

  • 『한국(韓國)의 미(美) 11 -산수화(山水畵) 상(上)-』(안휘준 감수,중앙일보사,1980)

  •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유복렬 편,문교원,1969)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계명구락부,1928)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홍선표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