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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생계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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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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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생계활동.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인간의 생활과정은 일종의 활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이란 인간의 활동체계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한 일은 인간의 활동과정이면서 동시에 그 활동이 물상화(物象化)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일은 인간의 활동력을 발휘하는 것이면서 활동의 대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단순히 자연에 본능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성과를 축적·발전시키며, 자기 생존을 위한 도구와 수단을 생산하여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지닌다.
일반 동물의 본능적 활동과는 달리, 인간활동의 물상화 과정은 이렇게 주요한 활동 양태와 그 사회적 조직, 그리고 개인의 행위능력을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시키는 역동성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요 조건이며 일반 동물과 구별짓게 하는 인간 특유의 것이다. 그래서 일의 수준과 내용은 인간활동의 역사적 발전 과정이나 생산력의 발전 수준을 나타낸다.
일은 인간의 활동체계를 뜻하기 때문에, 그 기초 범주는 역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 인간에게 있어서 일은 자연의 필연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인간도 자연의 범주에 속하고, 따라서 자연(대상세계)과의 신진대사를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서 동물적 본능으로만 살아가지 않고, 자연이나 문화의 주어진 환경에 단순히 적응하여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자신의 현실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하고 유용한 자원을 얻으려고 힘쓴다.
또 그것을 위하여 일종의 행위목표와 행위수단을 설정하며, 주어진 존재 상황을 처리·조절하면서 세계를 만들어간다. 이를테면 인간은 일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만들고, 일을 통하여 인간본성을 획득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만들어간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과정, 특히 일을 통하여 관념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자기자신을 객체화시키고, 일을 통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들며, 또 자신이 창조한 세계와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그래서 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와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매개체이며, 구체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이 자기자신에 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의 수행은 주체와 객체 양극이 상호 침잠해가는 과정이며, 인간이 자기실현을 성취하는 주체적 과정이다. 일은 인간의 주체적 활동체계이면서, 사회구성에서 고유한 문화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주체가 객체에 자신의 행위를 투입함으로써 객체는 주체적 형태로 변화되고, 동시에 자신의 행위도 객체적인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일은 생산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함께 일하며(작용하며) 서로 활동을 교환함으로써 생산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여, 생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특정한 형태의 사회관계에 편입되며, 이러한 사회관계 속에서 자연과의 관계, 즉 생산도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일을 통하여 역사적 인간이 되며, 개인은 일을 통하여 사회적 개인이 된다. 즉, 인간의 본성은 일을 통하여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추게 된다. 일, 특히 노동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측면의 사회관계, 즉 사람과 자연 사이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사람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적 질료와 관계를 맺는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바꾸며 사람들의 욕구를 보다 잘 충족할 수 있도록 자연을 바꾸어 가는 활동이다.
다른 동물들의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활동과는 달리, 노동은 이미 두뇌 속에 실재하고 있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식적이고 목적에 맞는 활동이다.
이러한 노동은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영원한 자연의 필연성이며, 사람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위한 일반조건이다. 또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통하여, 또 그 속에서 인간 상호관계도 형성된다.
인간의 활동을 매개로 사물 간의 교환이 생겨나기도 하고, 노동의 결과물을 매개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면서 사회관계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일과 의식 형성
우리 나라의 문화전통 속에서 일과 관련된 역사적 범주들은 각 시대마다 사회 구성의 특수성에 따라 추출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생활양식·생활수단·집단형성 또는 사회적 잉여의 배분 등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 나라 전통사회의 사회적 생산력은 각 시대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자연적 조건과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일의 유형을 발전시켰다. 일반적인 형태로는 수렵·채취·농경·상품생산 및 교환과 관련된 일로서, 기술적인 부분과 사회적인 부분으로 구별된다.
기술적으로는 일할 때 쓰는 도구의 발전과 사회적으로는 일하는 양태, 협동의 형태, 마을의 구성, 규범문화, 놀이문화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생산력의 발달이 극도로 낮은 조건 아래서는 함께 생존하기 위하여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졌고, 생산의 결과도 사회적으로 공유하였으며, 일반적인 생존수단도 사회적 소유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건 아래서는 공동체의 공동작업, 공동작업을 위한 공동체적 조직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거대한 생산력이기 때문이다.
집단형성은 인간의 생존뿐만 아니라 물질생산의 절대적 기반이 된다. 여기에서 분업의 형태는 매우 단순하다. 그리고 개인적 노동은 결코 서로 분리된 개별노동이 아니라 유기체적 총노동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정 작업을 위한 노동력 배분에서나 노동의 결과물을 분배하는 데 집단성의 원칙이 관철된다.
또한, 주위환경인 자연에 대해서도 각 개인이 집단의 성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될 때 비로소 그에 대한 처분권이 배당된다. 어쨌든, 그러한 집단성의 형태가 주로 혈연적 관계를 기반으로 발전하였을 것이고, 이러한 혈연 기반의 집단성 원리가 국가와 사회의 형태를 결정하는 기본적이고 물질적인 바탕을 이룬다.
수렵 및 채취·농경에서 일의 경험이 축적되고 생산적 지식이 확대되면서 능률을 올릴 수 있는 작업도구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일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게 되며, 효율적인 도구의 사용은 일의 계획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협동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일이 집단적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며 계획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거대한 의도와 지도 아래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개별성의 발전을 알리는 조짐이다. 전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개인의 기여도 비중이 커지면서 개별성이 발전하게 되며, 개인적인 생산이 집단적인 조절 아래 사회적 소유의 제반 형태가 변화한다.
개별성의 발전은 공동체 생산력의 발전에 기여하지만, 점차 집단성의 내부에서 개별성과 주체성이 형성되는 전제조건이 된다.
이를테면, 수렵노동의 발전과 그 영향은 노동 행위자의 개별성과 집단성 사이의 갈등을 표출시키며, 이 갈등은 분업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개별성의 발전은 각 개인의 불균등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한다.
기능의 분할에 의해 노동은 여러 가지 작업으로 나누어 지며, 작업의 내용에 따라 노동의 사고방식, 협동형태, 일에 대한 태도 등이 불균형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일은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사유양식을 발전시킨다. 가령, 채취활동은 일종의 분류적 사고를 발전시킨다. 채취 대상을 서로 구별하여 각각의 용도에 따라 선택해야 하며, 특히 양식이 될 수 있는 것과 독성이 있는 것을 구별하는 것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다.
그 밖에 채취활동에 필요한 지식으로는 성장 시기·발견 장소·양념 가능성·저장 가능성 등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어, 후에 식물 재배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채취활동에서도 여러 가지 도구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토기나 자기로 된 항아리는 식량이나 기타 물자를 수송하는 데 편리한 도구이며, 필수적인 저장수단으로 쓰인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지역적 이동이 원활해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렇게 일의 도구로서 토기의 발전은 우리 나라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고, 오래된 토기가 발견되는 지역의 범위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채취활동은 인간의 자연순응적인 행위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수렵의 경우에는 대상에 대한 행위자의 영향력이 일방적이어서, 자기 행위의 결과를 통해 일종의 인과성을 감지할 수 있고, 이것은 최초의 원초적 법칙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행위자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천이 된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게 되며, 세계는 본질적으로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원인행위에 의해 변화된다는 경험이 쌓이게 된다.
인격적인 행위와 만들어진 행위의 양식에 따라 상호 유추를 가능하게 하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유추법에 따라 구조화시킨다.
또한 행위양식에 따라 유추를 이용해 알 수 있게 되는 사건, 개별 사건에 숨겨진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격적 ‘힘’의 담지자 사이를 구분하는 능력도 발전한다.
이러한 구분은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나 권세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힘을 가진 자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사회규범이 생겨난다.
여기에는 합리적·법칙적 사고가 혼합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 온다. 그러나 합리적·이성적 계기들은 생존을 보장하는 한 계속 유지, 발전된다.
수렵과 채취 활동은 서로 다른 일에 대한 경험을 얻게 하는데, 주로 식물·양식의 채집과 작은 동물 사냥 정도의 활동에만 국한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결속·유대·결합의 새로운 형태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실제로 생활영역이나 노동영역에서 그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경우는 조직적으로 경제생활에 개입하고 사회생활의 다른 영역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동과 조직력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예식이나 제사·공공업무를 조정하는 일들이 점차 주로 남자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서로 다른 경험내용이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적으로 지속되면, 남성집단이 점차 여성집단에 대한 우위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채취나 수렵 생활에서 인간 자신의 행위를 가하지 않고 자연 속에 주어져 있는 것을 찾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자연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이것은 인간과 환경에 대한 종속관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경험과 지략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경험이란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일반사나 제례조직에서 주로 마을의 어른(연장자)에게 지도적 역할이 주어진다.
이렇게 인격적이고 자연적인 분업을 유리하게 하는 ‘힘’이 신체력이나 주의력과 같은 특징보다는 점차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나 지혜에 따라 발휘된다. 그래서 이른바 연장자 원칙이 극히 자연스럽게 정착한다.
연장자 원칙에서는 나이가 많고 적음이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일에 기여하는 정도와 이에 노련한 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의 영향력이 중시된다.
농경과 사육에서 생산자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기대와 욕구는 수렵에서 사냥꾼이 갖는 야생의 동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기대와 욕구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젠 동물을 단순히 살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길러서 새끼를 낳고 동무로부터 음식과 의복까지도 얻어내고 있다. 곡식도 이제는 그대로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남겨서 다음 생산을 준비한다.
이 같은 변화는 사회생활을 더욱 개선하고, 개선된 조건을 더욱 포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이른바 ‘직접적 소비’를 포기하는 현상을 가져온다. 이것이 인간의 노동행위에서 일종의 ‘추진력 조절장치’의 발전이며,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노동행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산력의 발전 때문이다. 생산력은 농경과 목축 활동을 연결하면 더욱 발전한다. 가축은 쟁기를 끌거나 물자를 운반하는 등 노동수단으로 이용되며, 생물을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사회적 부(富)의 원천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 가축을 사용한 것은 중석기시대부터였는데, 이때부터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고, 농경과 사육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는 여러 형태로 발전한다.
가령, 곡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고, 그 땅을 부수고 다듬기 위해서는 쟁기나 곡괭이 등의 농기구, 관개시설 등을 만들어야 한다.
또 토지나 물을 관리하는 작업이 생겨나고, 본격적인 곡물재배에서도 파종 준비를 한다거나 시비(논밭에 거름을 주는 일)·감독·추수 등의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농경적 생산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개별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집단성의 원칙이 급격히 무너지고 개별성의 원칙이 전개되면서 그 관계가 새롭게 변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농경과 사육으로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전문화와 분업체계가 발생한다. 가축이 생산력으로 이용되고, 남자들이 굳이 고생스런 수렵활동에 나갈 필요성이 약해지며 집에서 일을 해도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사육뿐 아니라 농경도 대부분 남성의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어 그 이전의 성별 분업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성별 분업은 분명히 그 이전에도 있었고, 이제는 일종의 형태 변형을 겪는 정도이지만, 농경과 목축 사이의 새로운 분업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분업이다.
수공업의 발전은 인간의 농경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급속히 발전한다. 그리고 농경에 필요한 새로운 도구를 제작하는 등, 전문화된 생산능력을 요구하면서 점차 자립되어 간다.
이것은 생산과 소유의 충동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적 분배를 조절하는 여러 기구와 장치들의 변동에서도 잘 나타난다.
농경과 목축 사이의 분업과 농업과 수공업 사이의 분업은 점차 도시와 농촌의 분리를 가져오는 물적 기반이 되며, 경제활동은 원격시장을 위한 생산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경향을 띠게 된다.
상품교환을 매개로 한 분업, 즉 상업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정신노동도 특정 사회계층이나 신분에 의해 독점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제 의식은 ‘무엇에 관한’ 의식이 아니고 그 스스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면서 마치 스스로 발전하듯이 나타나며, 점차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은 서로 이질적인 활동이 된다. 농경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인 토지의 소유문제와, 또 노동력에 대한 소유문제가 개념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체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특히, 토지에 대한 소유문제는 모든 경제질서의 기본이 된다. 여기에서 노동과 토지는 생산의 주체와 객체를 이루는데, 직접적 생산행위와 노동력의 관리, 그리고 토지의 관리행위가 각각 개별화되면서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발전한다.
이른바 농경사회라고 말할 때 그 특징은 노동 자체가 생산의 객관적 조건인 토지나 도구의 하위개념으로 존재하고, 더욱이 개인은 생산의 무기적 조건으로 자연적 존재 수준에 함께 배열된다.
즉, 개인은 무제한적 생산조건과 공동체적 소유의 한 요소가 되어 공동체 성원 안에 또 한 사람의 점유자가 된다. 여기에서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 문제는 모순의 계기를 이룬다.
조선시대까지의 농경사회에서는 ‘농민적 사고’라는 것이 일상의식에 스며 있었다. 「농가월령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가령, 기다린다든지 익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농경과 관련된 자연력에 대한 순응태도이다. 자연력의 성숙과정에서는 주로 ‘가꾼다’든지 ‘보육한다’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진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기후조건 등은 영원한 순환성을 갖는다. 가령, 농경도구가 발전하며 사물이나 자연대상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엄청난 자연력에 비하여 극히 미약하므로 인간은 자연에 계속 예속된다. 결국 자연에 대한 예속관계는 평행선의 순환을 이룬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인간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원인 행위자가 될 수 없고, 단지 자연력이 작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보조자일 뿐이라는 사고가 발전한다.
즉, 자연과의 일체 속에서 기계인과적 사고가 아니라 자연인과적 사고가 발전한다. 인간이 땅에 씨앗을 뿌리는 행위를 하지만, 자연이 이삭을 익게 만든다는 것이다.
농민이 씨앗을 뿌리고 추수하지만, 그가 곡식을 성숙시켜 곡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연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농민적 사고가 발전한다. 특히 이러한 농민적 사고는 가시적인 개별적 사건 뒤에 인격적인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상대화시킨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일과 문화 구성
수렵·채취·농경을 주요 노동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일은 자연순응적인 성격을 지니며, 시간에 따른 경험이 중시되고, 인간의 활동은 자연주의적 도덕원리로 조절된다.
특히 일반적으로 생산력이 낮은 수준에서는 자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일에서 집단성의 원리가 강력하게 관철된다.
그러나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집단성 내부에서 개별성의 원리도 생장하며, 그 두 원리는 서로 모순관계(통일과 대립)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전통사회의 변화를 추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모순관계는 대체로 네 가지 수준에서 복합적으로 드러나는데, 그 첫째는 토지나 기타 생산수단의 소유와 점유, 둘째는 일의 결과에 대한 분배, 셋째는 소비나 신용 등의 유통과정, 그리고 넷째는 노동과정의 조직과 편성이다.
각각의 수준 또는 복합적인 수준에서 집단성의 원리와 개별성의 원리가 어떤 양식으로 관철되고 있는가는 우리 나라 전통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원리는 항상 대립관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문화 속에서는 대체로 상호 긍정과 조화, 그리고 순환관계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문화에서 일하는 과정을 보면, 집단성의 원리가 밑바닥에서 작용하는 가운데 개별성의 발전을 인정하고, 이러한 발전을 기반으로 새로운 집단성의 형태를 만들어 간다.
작업(노동)과정과 관련해서 ‘두레’는 일정한 개별성의 토대 위에서 집단성을 살려 나가는 전형적인 모습의 목적에 부합되는 공동작업이다.
신용과 소비문제, 노동배분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계’나 기타 협동조직, ‘품앗이’ 등이 있는데, 이것은 집단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개별성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것들은 일종의 계약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령 지주의 일과 전호(佃戶)의 일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충돌이 생기면, 집단성과 개별성의 모순은 일종의 대립관계로 발전하고, 총체적 사회관계의 통일성이 무너기도 한다.
한글 고전소설이나 한시(漢詩)에서는 노동과 일에 관한 것을 잘 다루지 않고, 양반계급에서 지은 이른바 애민시(愛民詩) 계열에 일과 관련된 글들이 있다.
물론,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농가월령가」, 정약용(丁若鏞)의 한시, 박지원(朴趾源)의 한문 단편, 판소리 「박흥보젼」, 시조 등 여러 장르에서 일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많다.
우리 나라 문화의 일상성을 나타내는 것 중에 민요가 있다. 민요는 노동요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민요를 기능적으로 분류하더라도 노동요가 가장 많다. 기록된 노래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풍요(風謠)」가 있다.
이는 신라 선덕여왕 때 승려인 양지(良志)가 영묘사(靈妙寺)의 불상을 건조할 때 남녀들이 진흙을 운반하면서 부른 노동요이다.
노동요의 종류를 보면, 농경·어업·벌채·길쌈·방아·잡역 등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러한 노래와 놀이들은 노동을 즐겁게 하고, 집단노동을 할 때 행동을 통일하여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것들이다.
노래의 내용은 여음으로만 된 것, 사설이 포함된 것, 사설이 줄거리를 갖춘 것 등이 있으며, 또 노동 자체와 밀착된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농경과 관련된 노동 예찬과 즐거움을 표현한 것들이 가장 많고, 일 자체의 즐거움, 일을 하고 난 뒤의 보람, 일하며 생각하는 결과에 대한 기대 등이 있다.
물론, 일한 대가가 없는 것에 대한 노래나 생활의 어려움, 생활의 괴로움을 나타내고, 일과 농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수탈과 착취로 인한 허무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불평등이 신분제나 기타 여러 형태로 구조화되어 있고, 따라서 잠재적 또는 현시적 계층·계급의 갈등이 작용하는 곳에서는 노동과 일의 모든 형태에서 외부로부터 받는 강제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자연의 필연성’에 따른 노동과 일의 형태는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강압되고 억압된 노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노동형태 속에서 문화가 형성되고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은 인간이 자기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사람이 일하는 과정은 사람의 힘이 외화(外化)되고 인간 주체가 물상화되는 필연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인간의 삶은 그러한 필연성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객관성을 가지고 축적되고 발전할 수도 있다. 노동이 자유로운 주체의 행위로서 자연의 힘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그것은 ‘자유노동’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노동의 일반적 성격에서 볼 때, 삶의 현실을 능동적·생산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모두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능동적으로 자기의 것으로 한다는 것은 주체가 목적을 설정하며, 주체적 힘을 동원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킨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의 문화적 측면은 단지 사용가치 생산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잠재력을 발전시키며,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따라 의식적으로 통제, 조절, 처리하는 힘에 있다.
우리 나라 문화에서는 노동과 일이 놀이로 승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두레의 경우 일의 시작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 놀이는 결코 일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 자체가 놀이이며, 문화 형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일에서 집단성과 개별성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하나의 자유노동의 미학이다.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과 사용가치를 전체 사회적 수준에서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며, 행위주체의 생산적·재생산적 활동과정이다.
이 속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형성된다. 따라서 자유노동은 극단적인 형태의 강제노동을 제외하고 모든 형태의 노동에 포함되어 있다. 즉, 노동과정 자체에는 창조적인 자유노동의 계기가 포함되어 있다.
직접적 생산력의 발전으로서의 노동, 인간의 잠재적 노동력이 발전하는 노동은 항상 문화형성적 측면을 갖는다. 이를테면, 역사적으로 볼 수 있는 노동형태에서 자유노동의 성격이 비록 하나의 계기로 존재하더라도, 바로 그 점 때문에 노동의 문화형성적 기능을 말할 수 있다.
신분제나 기타 불평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노동형태는 기본적으로 억압된 노동이다. 억압적 노동조건과 경험 아래에서 노동은 자기실현에 대한 도피이며, 휴식이 오히려 자유와 행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에서 노동의 본질은 왜곡된다. 그래서 노동은 근로대중에게는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는 형태로 발전된 경우가 많다.
노동의 문화적 측면은 불가피하게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노동이 일이면서도 동시에 노동에 의해 자기실현을 저해하는 요인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자유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일과 인간의 노동이 지닌 성격이 변화되고 근대적 세계에 관한 이념이 발전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직분과 일
일이란 사람들의 활동체계이기 때문에, 사회의 물질적 생산과정에서 인간이 자연과 맺어 가는 전체적 관계인 동시에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끼리 맺어 가는 전체적 상호관계를 내포한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전통사회, 특히 유교와 관련된 조선사회에서는 직역(職役)의 관념, 신분제, 농경에서 노동의 성격, 그리고 일에 대한 관념 사이에서 내적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는 불교의 일에 대한 생각은 다루지 않는다. 일과 노동의 문제와 관련하여, 가령 정도전(鄭道傳)은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을 통하여 불교를 비판하였다.
한용운(韓龍雲)은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의 ‘승려의 인권회복은 생산에서’라는 장(章)을 통하여 불교의 회생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은 주로 승려계층, 정치와 밀착된 지배계층에 있던 승려, 그리고 사원경제와 관련된 것이고, 불교생활에서 평신도들의 일상윤리와 일에 대한 태도는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유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노동은 일반적으로 자연에 종속되는 하위범주로 취급된다. 동시에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행위관계, 즉 공동체적 사회에 대해서 개별 인간은 하위적 존재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경제인식에서 개별 노동의 창조성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조선사회가 안정되면서 자영 소농민은 점차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였고, 개별 소농의 노동도 새로운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노동의 잉여가 점차 노동지대의 형태에서 물품지대의 형태로 변화하고, 노동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사회적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뚜렷이 분리된다.
그러나 노동 자체는 여전히 자연에 종속되는 범주로 취급되는 것이 본질적인 경향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욕구와 인간관계는 사회적으로 규정된다는 역사성을 일종의 단순한 자연형식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생산·분배·교환·소비라는 경제적 순환과정도 아무런 매개가 없는 직접적인 자연의 과정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사회적 관계는 결국 특정한 종교적·도덕적 범주 속에서 자연주의적으로 수렴된다. 인간의 노동과 일도 이러한 범주와 관계 속에서 파악하게 된다.
유교적 경제관념이 생겨나는 바탕은 인간이 자연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 관계는 극히 자연조건에 의존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생산력의 구조와 수준에 근거하여 일과 경제에 관한 유교적 관념이 사회구성에 다음과 같이 구조화된다.
첫째, 사람들끼리 물품을 교환하거나 기타 서비스를 주고받을 때 일종의 가치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은 사람의 신분이나 기타 ‘경제외적 강제’가 배제된 이른바 행위적 교환관계를 말한다.
사람의 됨됨이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관계 형성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행위적 교환관계가 노동과정에서 만들어내는 가치를 노동가치라고 부른다.
자급자족적 농경조건이나 유교적 경세관 아래 사람들끼리의 노동가치적 관계는 전체 사회적 재생산과정에서 볼 때 하위적 형태로 발전된다.
인간관계가 자연과 공동체 자체에 대하여 하위범주로 발전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종교적·도덕적 범주 속에 완전히 수렴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시 인간의 노동이 자연과 공동체(국가)에 대하여 하위적·종속적 범주로 취급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노동의 가치적 형태변화, 즉 물질생산에서 노동에 의한 가치의 형성과정은 사회적으로 거의 개념화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사회에서 실제적으로 관행되던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을 이론적으로 포착할 수 없었다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말하자면, 자연 경제적 조건 아래에서는 상품에 내재된 노동가치의 형성과정보다는 오히려 이것의 현상형태인 실물적 측면이 관찰의 전면에 나타난다.
상품이라는 것 자체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노동과 자연을 동시에 보게 되고, 상품 속에 투입된 인간의 구체적 노동이 사상(捨象)됨으로써 사회적(객관적이며 물질적인) 가치가 형성되어 이것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과정을 보지 못한다. 상품을 놓고 그 상품의 사용가치, 말하자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힘만 일방적으로 강조된다.
상품가격으로 현상된 상품의 가치 측면, 즉 구체적인 노동이 사상되어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노동이 만들어내는 가치측면은, 비록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부차적이며 사용가치에서 도출된 부수현상으로 본다.
가령, 『만기요람(萬機要覽)』의 재용편(財用篇) 전화조(錢貨條) 가운데 주전시말(鑄錢始末)과 용전지제한(用錢之制限)을 논한 곳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단순 상품생산과 유통의 최고 산물인 화폐도 그것을 단지 사회적인 물자교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사용가치적 수단으로만 여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상품가치를 단순히 상품의 실물적 관계, 즉 사용가치로만 보고 상품의 본질을 형성하는 상품가치를 노동량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노동의 결과로 나타난 잉여가치도 생산자가 국가나 지주에게 필요 노동부분(최저생계 수준) 이외에 부가적으로 공여된 노동의 양으로 보지 않는다.
생산자가 생산과정에서 소비한 사용가치의 총량은 그가 창조한 것보다는 적다고 보지만, 여기에서 나타난 차이, 즉 새로 발생한 가치증식은 결국 토지가 기름진 결과이며, 그것을 유일하게 자연의 선물로 본다. 이것은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 발전된 경제관이며, 이것이 일에 대한 유학적 인식으로 정착된다.
국가의 개혁정책을 포함하여 경제를 국가적으로 관리한다는 관념은 자연만이 영원한 불변가치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교적 국가통치의 원리에 따라 토지는 모든 부의 원천이며, 농경이 왕성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월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농업만이 유일하게 순생산물, 즉 잉여생산물을 창조하는 산업부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를 두면, 국가의 경제정책이나 생산정책은 무엇보다도 경지기반을 확대하는 일에 목표를 두게 된다.
그러한 발전의 추진력이 비록 국가에 의해서 주도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조선사회는 시대 전반에 걸쳐 획기적으로 경지면적을 확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조선왕조가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른바 사회적 평화를 안정시킨 시기에는 전체 사회적으로 모든 중앙 및 지방 관청은 경지기반을 개량하고 확충하는 데 열의를 보인다. 이와 같은 경제적 인식에 따르면, 사회의 여러 수준에서 검약정책이 실질적으로 관철된다.
여러 궁방(宮房)을 포함하여 조선사회의 문화유산들을 보면, 일찍부터 불필요한 규모와 사치성이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양반·하층을 포함하여 전체 신분계층의 생활수준이 가능한 한 최소로 축소될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노동력이란 사용가치에 의하여 결정되는 크기이다.
이것은 생산과정에서 생산자가 소비하는 크기로서 이미 주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검약적인 수준은 최소한의 소비를 뜻하고, 따라서 생산된 생산가치의 잉여는 커진다는 결론이다.
둘째, 인간의 노동 자체가 여전히 자연적·종교적 범주에서 도출되고, 사회적 관계도 자연형식으로 파악하여 종교적·윤리적 범주에서 도출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이것이 일에 대한 관념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고려사회를 비롯하여 조선사회의 지배계급은 특정한 형태의 신분제에 의해 이를테면 조선사회에서는 양반관료제라는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된다.
그래서 노동 자체나 인간의 사회관계가 종교적·자연적 범주에서 도출된다는 것은 각 시대의 지배계급이 본(本)으로 등장하고, 일하는 다른 사회계층은 그 본체에서 나온 말(末)로 나타난다.
조선사회의 양반관료계급은 본체로, 이 속에서는 사회관계의 국가성과 사회성이 일치하고, 기타 신분은 부속물로서 그 두 개의 개념적 범주가 분리되어 나타난다. 이리하여 지배계급은 ‘사회 위에 군림하는 사회의 기관(器官)’으로서의 모습을 갖는다.
이러한 체제적 성격은 조선사회의 독특한 민족자주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민족 전체의 문제는 양반의 일이고, 거기에서 피지배자인 다른 신분계층의 구체적 참여는 원칙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데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양반의 일은 다른 사회계층의 일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구별되고, 이 구별은 사회적 차별의 바탕이 된다.
셋째,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경제적 행위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자연이라는 노동실물, 즉 노동결과물이다. 여기에서 인간노동과 관련하여 특정 노동이 생산적이냐 또는 비생산적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를 엮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동에 대한 판단은 유교적 이념을 따르던 조선사회에서도 일종의 구조적 형태로 정당성을 획득해 간다. 이러한 정당성은 무엇보다도 조선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특히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농민의 노동은 가장 생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것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관념에서 잘 나타난다. 왜냐하면, 농민의 노동을 통하여 순수생산물이 창조되고, 또 농민의 노동은 인간의 원초적 행위로서 사회의 자연적 욕구충족을 위하여 가장 뚜렷하게 기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상인의 행위는 이차적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왜냐하면, 상업활동에서는 단지 이미 생산된 적정가치만 교환될 뿐이고 가치증식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지 소유자 사이의 가치 이동만 있고, 상인이 그 일을 담당한다고 믿었다.
더욱이, 토지의 소유와 점유관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확인될 때 비로소 사회적·법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그는 이에 대한 의무로 토지에 긴박(緊縛)된다. 농민과는 달리 상인은 현존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확인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하위계층으로 취급된다.
수공업 노동은 사회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인정하였으나, 그것도 원칙으로는 비생산적이라고 판단하였다. 말하자면 특정 물자를 생산, 제조하는 경우 특정량의 원료는 노동의 작용에 의하여 그 양태 또는 형태가 바뀐다.
그래서 그러한 형태전화(形態轉化)의 생산활동에 노동이 소모되지만, 그 노동에 대한 대가는 결국 최저생계비 정도의 급부(給付)로 족하다고 믿었다.
생산물은 노동의 결과로 그 속에 가치증대가 생기지만, 그 가치증대는 생산과정에서 소모된 생계수단의 경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노동 자체가 순수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가치증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관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사회적 잉여에 대한 소유는 단지 국가만이 조세의 형태로 거둬들일 수 있는 권능을 갖는다는 관념이 나오며, 비록 명목상이라 할지라도 국가만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수조권(조세를 거둬들이는 권리)을 전체 사회적으로 정당화시킨다.
사회적 총잉여, 즉 총지대로 표현되는 조세에 대한 관념에 따라, 토지점유자(농민)가 자신의 노동에 의하지 않고 타인의 노동력 착취에 바탕을 둔 농민의 토지소유는 그것이 조선사회에서 처음부터 관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동시에 조세대상은 단지 잉여물, 즉 지대에 한정시켜야 한다는 관념이 생기게 된다.
이에 따라 다른 소득형태에 대한 조세부담은 결국 그것이 생산을 저해하고 또 우회하더라도 사회적 총지대 및 사회적 총잉여량과 일치하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소득에 대한 조세부담은 기본적으로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수공업자와 상인층은 자의적인 국가권력에 의하여 혹독한 착취나 억압을 당하였지만, 상품생산과 유통이 발전하는 양상 속에서 체계적으로, 명확한 논거에 근거를 둔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은 결코 순수생산물을 창조하지 않으며, 따라서 비생산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근대 사회와 노동
단순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의 발전에 따라 사회적 욕구와 분업은 새로운 수준에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인간의 행위가 다양해지고 노동과정이 분화된다. 노동과 관련해 보면, 상품을 만드는 인간의 노동은 개념적으로 내적 분화를 겪는다.
한편으로는 노동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행위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이 시장이나 교환과정에서 상호비교가 가능해야 한다.
때문에, 상품에 내재된 인간노동은 일하는 사람의 구체적 경험이 배제된 추상적 노동이 되고, 또 그것은 상호교환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일반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노동의 추상성과 일반성이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가 된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이 발전함으로써 인간노동은 그 구체성과 추상성이라는 내적 분화를 겪고, 따라서 상품 속에는 인간노동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이 내재된다. 상품생산의 그러한 이중성은 일의 관념과 노동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상품생산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특히 조선 후기에는 노동력 자체도 상품이 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이 일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상품 속에 내재된 교환가치 측면이 사용가치 측면에서 점차 자립되어 간다는 실제적 경향을 뜻한다.
더 나아가, 노동의 이중 성격 또는 상품 안의 두 가지 개념적 범주 사이에서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점차 종속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기에서 사용가치는 상품생산의 발전에 따라 교환가치와 사회적 잉여가치를 담지하는 단순한 휴대자의 역할로 축소된다.
가령, 화폐·교역·이자·소작료 등의 용어들은 상품생산과 유통에 관련된 현상형태이며, 이것들은 노동이 가진 이중적 성격, 즉 사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고, 또 구체적이며 동시에 추상적인 성격이 모순관계를 가지고 표현된 범주들이다.
노동이 가진 하나의 측면, 즉 상호비교와 교환성을 실체로 하는 가치측면은 조선사회의 체제 위기와 근대적 노동개념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를테면, 농경적 자연경제 속에 정착하였던 자연주의적 사회형태는 노동의 가치측면이 표출되면서 일종의 모순상태에 빠진다.
노동의 가치측면은 무엇보다도 인간행위의 상호비교성과 상호교환성을 표출시키기 때문에 인간행위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는 물적 기초가 되며, 이것은 민주적 성향을 내재함을 뜻한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와 노동을 종교적·도덕적 범주에서 도출하여 자연주의적으로 취급하였던 노동관과는 달리, 인간의 행위나 작위가 중심이 되는 행위론적 사회형태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노동에 대한 평가가 유교적 위계질서 속에서 차별적으로 구조화되던 경세관과는 달리, 인간노동의 동등한 가치를 부각시키고 행위주체의 민주적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관계가 싹튼다.
세계사적으로 노동의 가치측면이 상품관계로 물상화되고, 사회관계가 점차 상품관계로 변화되면서 전근대적인 자연주의적 사회와 모순을 발생시켰고, 이 모순이 마침내는 시민혁명에 이르게 된다.
상품생산의 전개와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사회편성의 원리와 일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다. 전근대성(前近代性)에서는 인간의 사회관계와 행위함수가 종교적 혹은 자연적 질서의 하위범주로 취급되었다.
반면, 시민사회에 들어와서는 정치권력까지도 천(天)·신(神)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즉 인간 상호간의 계약적 행위에 원천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성이 사회에 관철하면서 사유재산권에 바탕을 두고 부를 획득하는 사회적 활동과 일에 관한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는 데 기본적인 관심을 쏟게 된다.
근대성의 본질은 이를테면 행위론적 사회구성에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에 들어와서는 바로 일과 인간의 활동, 특히 노동의 가치측면이 사회구성원리로서 개념화되고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출신 성분이나 됨됨이에 상관 없이 개인들의 행위(또는 행위 결과) 자체와 그것의 상호비교, 교환이 사회구성에 부각되며, 행위의 물상화·객체화·객관화가 사회이론에서 중요하게 된다.
이제 개인의 특성과 사람의 됨됨이는 과학과 법 앞에서 사상되어 평등하게 되고, 그 법의 작용 아래에서 개인들의 행위함수(교환·비교·활용·생산 등)는 법적 형식을 얻게 됨으로써 법 자체가 사회편성의 형태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근대사회에 들어오면 법적 사건이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일로 부각된다.
이제 개인들의 개별성과 특수성은 사상되는 반면, 그들의 행위들은 내적 상관관계를 만들고 구조적(자본주의적) 성격을 띠면서 재생산된다. 경제과정에서는 바로 노동자의 인격이 사상되고, 노동 자체, 그것도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 중요하게 된다.
인간의 활동과 일은 점차 사회의 기초 영역인 물질생산에서의 활동으로 축약되고, 이것이 근대사회의 법권능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시민사회에서는 인간 행위에 대한 자유 보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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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민요집성  (김사엽·최상수·방종현 편, 정음사,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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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굿과 두레굿의 의식구성」(이보형,『민족음악사』 4,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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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5년)
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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