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대중(大仲), 호는 수촌(水村)·우졸옹(愚拙翁). 임영로(任榮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승지 임연(任兗)이고, 아버지는 평안도관찰사 임의백(任義伯)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로 김상(金商)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1663년(현종 4)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고, 1671년 재랑(齋郎)·장악원주부·호조정랑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유배될 적에 사직하였다가 다시 단양군수·사옹원첨정 등을 역임하였다.
1701년(숙종 2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장령·승지·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연잉군(延礽君)의 세자 책봉에 앞장섰다. 그 뒤 신임사화로 함종에 유배되었다가 금천(金川)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영조 즉위 후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가 풀림)되었다.
만년에는 『주역』·『논어』를 직접 손으로 베껴 써가면서 그 뜻을 깊이 연구하였고, 시에 있어서는 특히 당시(唐詩)를 좋아하여『가행육선(歌行六選)』·『당절회최(唐絶薈蕞)』·『당률집선(唐律輯選)』·『당아(唐雅)』 등의 시가집을 엮었으며, 이밖에도『논어취분(論語聚分)』·『사가할영(史家割榮)』·『선문(選文)』·『철영시(掇英詩)』·『수촌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