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 ()

불교
인물
삼국 시대 신라 선덕왕(재위 632-647) 때 대국통을 지낸 승려로, 불교 교단의 규율을 제정하고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을 주도함.
이칭
별명
선종랑(善宗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왕경(경주)
주요 저서
『사분율갈마사기(四分律羯磨私記)|『십송율목차기(十誦律木叉記)』|『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사분율갈마사기(四分律羯磨私記)』|『십송율목차기(十誦律木叉記
주요 관직
대국통
내용 요약

자장은 삼국 시대 신라의 대국통, 황룡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당에 유학하여 명성을 떨쳤고 당 태종의 두터운 예우를 받았다. 643년(선덕왕 12) 선덕왕이 자장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여 귀국한 후 분황사에 머무르며 대국통이 되었다. 645년(선덕왕 14)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웠다.

정의
삼국 시대 신라 선덕왕(재위 632-647) 때 대국통을 지낸 승려로, 불교 교단의 규율을 제정하고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을 주도함.
주요 활동

자장은 김무림이 천부관음을 조성한 공덕으로 얻은 아들이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주1’(또는 주2’) 등의 수행에 전념하였다. 국정에 참여하라는 선덕왕의 부름에 “차라리 하루라도 계(戒)를 지키고 죽을지언정 백년 동안 계를 어기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라며 거절하였다. 이후 출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자장은 638년(선덕왕 7)에 문인 실(實) 등 10여 명을 데리고 장안(長安)으로 갔다. 장안에 도착한 자장은 당 태종(太宗, 재위 627-649)이 보낸 사신의 위로를 받으며 승광별원(勝光別院)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황제와 황태자의 보살계사였던 법상(法常, 567~645)을 만나 주5를 받았다. 때론 종남산에서 수행에 매진하기도 하였는데, 그곳에서 도선을 만나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견해도 있다. 643년(선덕왕 12) 선덕왕은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자장을 불러들여 대국통(大國統)으로 삼고, 분황사에 머물게 하였다. 석가족을 표방했던 진평왕을 계승한 선덕왕은 불교를 통한 주3에 공을 들였고, 자장이 이를 도왔다. 이때 황룡사구층탑의 건립이 이루어졌다. 한편 자장은 국왕과 조정의 전적인 지원 하에 불교 교단의 규율도 정비하였다. 자장의 저술에는 『사분율갈마사기』, 『십송율목차기』가 있고, 자장이 당에서 귀국할 때 함께 왔던 원승(圓勝)도 『사분율갈마기』, 『사분율목차기』를 지었다. 자장은 원승과 함께 신라에서 율부(律部) 강의를 열었다. 그리고 보름마다 승려들이 모여 주6주7하고 율에 따라 죄를 참회하는 주4을 하게 하였고, 매년 겨울과 봄에 율을 지키고 어기는 것에 대한 시험을 실시하였다. 자장은 도읍뿐만 아니라 지방 사원의 규제 방안도 마련하였다. 지방의 사원에 순사(巡使)를 파견하여 두루 살펴보게 하고 ,승려들의 잘못을 경계하고 단련하게 하였다. 불경과 불상을 장엄하게 꾸미는 것도 일정한 규정을 따르게 하였다.

학문과 저술

자장의 학문 경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속고승전』에 귀국 후 신라에서 『섭대승론(攝大乘論)』과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강의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자장은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일본흥륭불전소초목록(日本興隆佛典疏鈔目錄)), 『사분율갈마사기(四分律羯磨私記)』, 『십송율목차기(十誦律木叉記)』(이상 2권은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라는 저술도 있었다. 이를 통해 자장이 주8 신앙에도 관심이 있었고, 섭론학(攝論學)에도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원광에 의해 신라에 알려진 섭론학이 자장의 강의에 의해 더욱 보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훈과 추모

『속고승전』에서는 자장과 원승이 율을 보급한 공적을 치하하여 ‘빛의 시작이다’, ‘신라에 비로소 삼학(三學: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이 갖추어졌다’고 평가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속고승전(續高僧傳)』

단행본

신종원, 『신라초기불교사연구』(민족사, 1992)
『신라사대계 13-신라의 불교 수용과 확산』(경상북도, 2016)

논문

김영미, 「신라 中古期 三綱制의 시행과 그 기능」(『한국고대사연구』 72, 한국고대사학회, 2013)
이상준, 「慈藏의 佛敎思想과 佛敎治國策」(『한국사연구』 76, 한국사연구회, 1992)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주석
주1

탐욕을 없애기 위하여 남의 몸을 백골로 관찰하는 법. 우리말샘

주2

탐욕을 없애기 위하여 남의 몸을 백골로 관찰하는 법. 우리말샘

주3

나라를 다스림. 우리말샘

주4

같은 지역의 승려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행하는 의식. 매월 만월(滿月) 때와 신월(新月) 때에 행하는데, 이때는 설계(說戒)와 더불어 지나간 반달 동안의 일을 반성하고 죄가 있으면 고백하고 참회한다. 우리말샘

주5

십계(十界)의 하나.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성인의 경지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6

위로는 진리에, 아래로는 중생의 마음에 부합하다는 뜻으로, ‘불경’을 달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염불 송경’을 줄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8

서방 정토에 있는 부처. 대승 불교 정토교의 중심을 이루는 부처로, 수행 중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에서 교화하고 있으며, 이 부처를 염하면 죽은 뒤에 극락에 간다고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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