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자는 자장(子長), 호는 옥천(玉川)이다. 형조의 잡직(雜職) 종칠품(從七品)의 체아직(遞兒職)인 명률(明律)을 지낸 장택(張澤)의 아들로, 1790년 형조의 율과(律科)에 급제하여 훈도(訓導)·별제(別提)·교수(敎授) 등을 역임하여 율학을 가르쳤다.
유최진(柳最鎭)의 『초산잡저(樵山雜著)』에 의하면 그의 수묵도(水墨圖)는 옛사람의 필의(筆意)를 깊이 터득하여 원체(院體)의 습기(習氣)를 씻어버렸다고 하였으며, 조희룡(趙熙龍)도 그의 그림이 삼매의 경지에 들었다고 평하였다. 전하는 유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