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이다. 남산 동쪽 종남산 기슭 아래 동북쪽 일대로 영조 때에 남소영이 있었던 곳이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곳에 장충단을 설립하고 을미사변 때에 순사한 이경직과 홍계훈을 비롯한 장졸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일본은 장충단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을 심는 등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이준의 동상과 사명대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는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남산 동쪽 봉우리 종남산(終南山) 기슭 아래의 동북쪽 일대는 예로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이 계곡에는 약 200여 년 전인 영조 중엽 이래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南小營)이 있었으며, 지금의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길과 성벽이 서로 엇갈리는 곳에는 남소문(南小門)이 있었다.
그 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 자리에 장충단을 꾸미고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을 때 순사한 궁내부 대신 이경직(李耕稙)과 연대장 홍계훈(洪啓薰)을 비롯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장충단이 사라졌으며, 1920년대 후반부터는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 수천 그루를 심은 후 연못 · 놀이터 · 산책로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뒤 일본인들이 상하이사변 때 전사한 일본군인들의 동상을 이곳에 세웠으나, 광복 후에 즉각 철거되었다.
정부 수립 후 공원 경내에는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철거하게 된 수표교가 이 공원으로 이전하였다. 수표도 함께 이전하였다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다시 옮겨졌다.
1964년에는 이준(李儁)의 동상이, 1968년에는 사명대사(四溟大師)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1968년에는 아름다운 분수대도 설치되었다. 1962년 이후로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 중앙공무원교육원(그 뒤 동국대학교로 양도) · 재향군인회 등이 들어서면서 공원 면적이 점차 축소되었다.
또 도시계획법상 근린공원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시설로 되어 있는 국립극장 · 국립국악원 등도 들어섰으나, 그 뒤 일부 기관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1940년 처음 공원이 될 때 41만 8000㎡였던 이 공원은 이렇게 잠식 · 침식되어, 1984년에는 면적이 29만 7000㎡로 축소되었다. 또, 이상의 시설 이외에도 어린이야구장 · 테니스장 · 수영장 등의 체육시설도 있어 장충단 일대가 지녔던 옛날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그러므로 서울시와 건설부는 장충단공원을 독립된 근린공원으로 존속시킬 경우 더 많은 시설들이 들어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1984년 근린공원인 장충단공원 전역을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의 일부로 합병하였다.
공원 주변에 장충체육관 · 국립극장 등의 문화시설이 있고, 남산 산록의 아름다운 풍경지로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항상 소풍 및 산책하는 시민들로 성황을 이룬다.
2010년에는 장충단 자락에 남산 소나무와 산딸나무, 이팝나무 등으로 조성된 숲속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지하철역사의 지하수를 이용한 벽천폭포와 생태연못, 실개천 등이 새로 조성됨으로써, 장충단공원은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하였다.
공원 내부에는 196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장충단비와 197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표교가 있다. 장충단비의 높이는 183㎝이고, 너비는 68㎝에 두께는 35㎝이며 비문에는 장충단공원을 세우게 된 내력이 적혀 있다.
이 외에 장충단공원 일대는 승정전, 관성묘, 와룡묘 등 국가유산을 비롯하여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이준열사, 김용환 선생 동상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애국충정이 깃든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