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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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중국 도교계통의 신령인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 사묘. 시도민속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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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중국 도교계통의 신령인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 사묘. 시도민속문화재.
내용

중국 도교계통의 신령인 관운장(關雲長)을 모신다. 관운장을 모시는 유풍은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온 명나라 군사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고, 그 영험이 두루 알려지면서 임진왜란 직후 먼저 남묘(南廟)와 동묘(東廟)가 왕명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1883년(고종 20)에 와서는 성균관 뒷산에 이 관성묘가 세워져 북묘(北廟)라 불렸는데, 1940년대성균관 화재 때 현재의 명륜동으로 옮겨졌다. 건물은 홑처마기와집으로 되어 있고 건물 안 북면에다 판탁자(板卓子)를 두어 그 위에 여러 신령을 모신다.

주신(主神)인 관운장이 가운데 자리하고 그 좌우로 석가여래·삼불제석·최영장군과 그의 아장(亞將), 공민왕부부, 옥황상제, 관운장의 부인, 칠성, 태상노군(太上老君) 등이 무신도(巫神圖)의 형태로 모셔져 있다.

그 밖에 오방신장기·삼지창·부적판 등도 안치되어 있다.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이 대제일(大祭日)이다. 북묘의 제사는 원래 정월초하루와 10월에 위축(爲祝)으로 나라에서 맡아 지냈던 것인데, 조선조말에 오면서 수명장수를 비는 위축기도처로 변하였다.

그리고 점차 주위 민간의 치성이 빈번하여지면서 무당들의 출입이 잦게 되자 1904년 경사(警使) 신태휴(申泰休)는 그것을 금하고자 민간에서 모시는 관제상(關帝像) 3,000위를 북묘에 모은 적이 있다.

그러나 1908년에 그 공식적인 제사가 폐지되고, 그 뒤 백성들이 이곳에서 제사드리는 한편 무당의 치성소로 되었다. 현재 무당의 치성은 끊어져 있다.

참고문헌

『매천야록(梅泉野錄)』
『서울의 문화재』(서울특별시, 1980)
「한말의 궁중무속」(최길성, 『한국민속학』 3, 1970)
집필자
조흥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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