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여능(汝能). 아버지는 첨지 장인(張遴)이다.
어려서는 문과에 뜻을 두었으나 붓을 던져버리고 1665년(현종 6) 무과에 급제하였다.
수문장을 거쳐 도총부도사·첨사에 이르렀다. 성품이 어질었으며 영민하고 담론을 잘하였다. 선정을 베풀고 항상 국가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일신의 영화를 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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