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밀라 ()

목차
개신교
인물
해방 이후 창영교회 부목사,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 등을 역임한 목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85년
출생지
충청북도 제천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창영교회 부목사,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 등을 역임한 목사.
내용

충청북도 제천 출신. 아버지 전연득(全軟得)은 기독교인이 된 뒤 제천·청양·충주·원주 등지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이에 그녀도 아버지를 따라 이주하며 유년기를 보냈고, 충주와 원주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뒤 선교사의 도움으로 공주 영명학교에 들어갔다.

1931년 졸업 후 교장의 권유로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하여 1935년 졸업하였으며, 원주지방 순회전도사로 임명되었다. 1940년에는 감리교본부의 배려로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신학부에 유학한 적도 있으며, 귀국 후 원주 제일교회·원산 중앙교회를 거쳐 1947년에는 인천 창영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전도사로 몇 해 동안 일하던 중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교회를 담임, 시무하는 길을 택하여 인천 갈월교회로 임지를 옮겼으며, 1955년 3월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6회 중부연회에서 10명의 목사가 탄생될 때 또 한 사람의 여성 명화용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 해에 창영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다가 1960년 서울 불광동에 있는 양광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66년에는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로 피선되어 1974년 4월까지 여선교회 사업을 관장하였다. 그 뒤 양광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79년 2월 정년으로 은퇴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목회활동에 정진하였다.

참고문헌

『한국감리교를 세운 사람들』(한국감리교회사학회편, 1988)
『감리교와 신학대학사』(이성삼, 한국교육도서출판사, 1975)
「한국 최초의 여목사가 되기까지」(전밀라, 『기독교사상』, 19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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