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9년(문종 3) 2월에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종2품)에 임명된 데 이어, 3월에는 비서감 지중추원사(秘書監知中樞院事), 이듬해 정월에는 중추원사 한림학사승지(中樞院使翰林學士承旨)가 되었다. 1051년 8월에 중추사 예부상서(中樞使禮部尙書)로서 죽었다.
정걸(鄭傑)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가운데 홍문공도(弘文公徒)라 불린 정배걸(鄭倍傑)의 오기(誤記)로 보기도 하지만 그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