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숙 ()

현대문학
인물
1948년에, 등단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한국전쟁의 참상과 전후 한국 사회의 모순 및 현실 극복 의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소설가이자 국문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2년
사망 연도
1997년
출생지
평안북도 영변
주요 작품
전황당인보기, 금당벽화, 끊어진 다리
주요 경력
고려대학교 교수
대표 상훈
제1회 내성문학상, 제1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한민국예술원상(1986)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한숙은 1948년에 등단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한국전쟁의 참상과 전후 한국 사회의 모순 및 현실 극복 의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소설가이자 국문학자이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전황당인보기」가 당선되었고, 같은 해 『사상계』에 「금당벽화」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한숙은 한국전쟁의 폭력성을 문학 작품으로 재현하며 전쟁의 충격으로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한국인의 가치관이 왜곡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정의
1948년에, 등단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한국전쟁의 참상과 전후 한국 사회의 모순 및 현실 극복 의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소설가이자 국문학자.
인적사항

정한숙은 1922년 평안북도 주1 출생으로, 호는 일오(一悟)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휘문고등학교 교사, 고려대학교 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한국문예진흥원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활동과 작품

정한숙은 1946년 단신 월남해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47년 전광용, 남상규, 전영경 등과 『주막』 동인을 조직했고, 1948년 3월 단편소설 「흉가」가 『예술조선』 신인상 가작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진출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1950년에 한국전쟁으로 적치하 서울에서 약 90여 일 동안 숨어 살았던 정한숙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부산 피날 시절에 「광녀」와 「아담의 행로」 등을 발표했고, 1954년에 다시 상경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전황당인보기」가 당선되었다. 같은 해 『사상계』에 「금당벽화」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한숙은 한국전쟁의 폭력성을 문학 작품으로 재현하며 전쟁의 충격으로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한국인의 가치관이 왜곡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동시에 전후의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진지하게 탐문하며 현실 극복의 가능성을 문학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자 했다. 정한숙의 1950년대 작품에는 전후의 주2 현상을 진단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정한숙은 「전황당인보기」에서 전통문화와 선비들의 우정을 주제로 삼아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정신적인 문화의 가치와 대조하며 한국전쟁이 전통의 붕괴와 해체로 이어졌음을 이야기했다. 「전황당인보기」에서 정한숙은 전통 예술인의 고뇌와 갈등을 다루며 산업화 시대에 상실해 버린 문화적 가치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한다.

1958년 제1회 김내성 문학상 수상작인 「암흑의 계절」(1957)은 1·4 후퇴부터 휴전이 성립된 시기까지의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피난 과정을 주인공 경옥의 수난사로 이야기한 작품이다. 정한숙은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게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고, 전후 한국 사회에 팽배했던 적대감과 불안감이 한국인들의 삶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음을 경고했다.

정한숙은 1960년대에도 1950년대와 연속성을 가진 작품들을 발표했다. 정한숙은 1960년대에 전후 한국 사회의 재건 가능성을 「끊어진 다리」 등과 같은 소설을 통해 제시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제목 끊어진 다리는 주인공 연의 잘려 나간 다리를 지칭하며 이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의미한다. 동시에 끊어진 다리는 식민지 시기 일제의 수탈과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고 있다.

정한숙은 1970년대에는 『소설기술론』(1973), 『소설문장론』(1975), 『한국문학의 주변』(1975), 『현대한국작가론』(1976), 『현대한국소설론』(1977) 등의 연구업적을 펴냈다. 1987년부터 국제 주3 한국본부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 등을 맡았고, 1991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및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에 선임되었다. 1997년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한숙은 제1회 내성문학상(1958), 제1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3), 대한민국예술원상(1986), 3·1문화상(1988) 등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일오 정한숙 선생 탄생 백주년 기념사업회 엮음, 『정한숙의 삶과 문학』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2)

논문

김준현, 「1950년대 문예 매체의 지형과 정한숙 문학의 위상」 (『어문논집』 95, 민족어문학회, 2022)
최동호, 「예술가 소설과 인간상의 탐구—정한숙론—」 (『정통문학』 1, 정음사, 1985)
주석
주1

평안북도 영변군에 있는 면. 구룡강 하류에 있어 군사 요충지로 발달하였으며 비옥한 평야가 있어 농산물이 많이 난다. 양잠이 발달하여 명주(明紬)가 유명하며 부근에 약산 동대가 있다. 군청 소재지이다. 우리말샘

주2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어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어지러운 상태. 우리말샘

주3

세계 각국의 시인, 극작가, 편집인, 평론가, 소설가 등 문필가들이 문학을 통하여 국제간의 이해를 촉진하고자 조직한 문화 단체. 1921년 영국에서 창립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54년에 가입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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