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철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삼화부윤, 성진감리, 성진부윤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도여(道汝)
혜전(惠田)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9년(철종 10)
사망 연도
1945년
본관
초계(草溪)
출생지
강원도 횡성
정의
대한제국기 삼화부윤, 성진감리, 성진부윤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도여(道汝), 호는 혜전(惠田). 강원도 횡성 출신. 첨지중추부사 정책화(鄭策和)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5년(고종 22) 음직(蔭職)으로 기용되어 원산감리서서기관(元山監理署書記官)에 임명되었다.

서기관 재직 때 개항장의 방파제공사에 국고금 10만 냥을 절약하여 총세무사(總稅務司)의 신임을 받았고, 그 뒤 부산항에 근무할 때는 일본인의 횡포를 막고 조선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노력하였다. 1896년 경흥구지사(慶興口知事)에 임명되고 주임관 5등이 주어졌다.

러시아와의 교역항인 경흥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 러시아와 외교활동에 노력하였다. 1897년에는 삼화부윤으로서 다시 삼화감리를 겸하였으며, 이 해 진전(眞殿) 영건과 선희궁(宣禧宮) 이건시 감동(監董) 궁내대신 이하 공로에 따라 시상할 때 가자(加資 : 품계를 올려 줌)되었다.

1899년 성진감리 겸 성진부윤이 되고 주임관 4등이 주어졌다. 그 뒤 안악군수를 역임하고 안산에 낙향하여 있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독립운동의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일본경찰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다가 광복 직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일성록(日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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