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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암(鄭華岩)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흑색공포단, 항해해방연맹, 중한청년연합회 등을 결성 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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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흑색공포단, 항해해방연맹, 중한청년연합회 등을 결성 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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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윤옥(允玉), 호는 화암(華岩). 본명은 정현섭(鄭賢燮). 전라북도 김제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정철연(鄭轍淵)이고 아버지는 정환전(鄭桓全)이다. 외조부는 진주강씨(晉州姜氏) 강흔계(姜昕季)이고, 처부는 김제조씨(金堤趙氏) 조응식(趙膺植)과 수원백씨(水原白氏) 백원보(白元普)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 때 고향에서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1920년 8월 극동을 시찰하는 미국의원단의 한반도 방문 때 일제침략의 부당성을 건의하려다 일본경찰에 쫓기게 되자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8년 이회영(李會榮)·신채호(申采浩) 등과 조국광복운동은 혁명적 무력투쟁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협의하였다. 중국국민혁명의 원로 리스쳉[李石曾]·우중후이[吳鍾暉] 등과 제휴, 동방자유혁명자연맹[東方自由革命者聯盟]을 조직하였다.
1930년 4월 20일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11월에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해 직접적인 무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재중국무정부주의자 유기석(柳基石)을 만나 유자명(柳子明)·장도선(張道善)·정해리(鄭海理)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31년 1월 원심창(元心昌)이 상해로 오면서 조직을 강화하고 상해 일대에서 친일배 및 전향자 등을 색출, 사살해 독립운동에 일대 활력을 불어넣었다. 1933년 3월 이강훈(李康勳)·원심창·백정기(白貞基)·유기문(柳基文)·이용준(李容俊)·진수방(陳樹芳)·전화민(田華民) 등과 규합, 상해해방연맹(上海解放聯盟)을 결성하였다.
1933년 3월 중순 일본 주중(駐中) 상해공사 아리요시[有吉明]가 중국 유력자를 육삼정(六三亭)에 초청해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본공사를 사살하려고 계획했으나 밀정의 고발로 거사 직전에 잡혔다.
1936년 국내 호서은행(湖西銀行)에서 탈취한 5만 7,000원을 기금으로 기관지 『남화통신(南華通信)』을 발행해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별동대 맹혈단(猛血團)을 편성하는 한편, 중국 항일운동세력과 연합해 중한청년연합회(中韓靑年聯合會)를 조직했으며, 『항쟁시보(抗爭時報)』를 발간하였다.
1940년부터 푸젠성[福建省] 내에서 이강(李剛)과 함께 광복 때까지 광복군 활동의 현지 책임자를 지냈다. 특히, 이 때 일본군의 수송로를 폭파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생포된 연합군의 포로를 구출하는 공작에도 공헌하였다.
또한, 일본 군내의 한국인 학도병 탈출 공작도 아울러 전개하였다. 광복 후 귀국해, 4·19의거 후 통일사회당 정치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나의 회고록』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198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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