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의 7·29 총선거 이후 혁신계의 사회대중당이 분열된 뒤 다시 통합운동을 벌여 1961년 1월에 창당되었다.
사회대중당 발기 초부터 시작한 진보당계의 김달호(金達鎬)계와 비진보당계간의 알력은 총선거 후 9월 15일 비진보당계의 김성숙(金星淑)·정화암(鄭華岩)·최근우(崔謹愚)·송남헌(宋南憲)·이동화(李東華)·유병묵(劉秉默) 등 총무위원의 결별성명으로 사회대중당은 진보당계와 비진보당계로 갈라졌다.
비진보당계는 한국사회당·혁신동지총연맹·민주사회당·한국독립당·사회혁신당 등 5개 혁신정당의 통합을 추진하여 10월 25일에는 각 단체별로 5인대표로 구성된 혁신5당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독립사회당’으로 당명을 결정하여 결당을 서둘렀다.
그러나 결별파내에서 다시 분열이 생겨 전 근로인민당계의 최근우·유병묵 등은 11월 27일 인도식 민족자주노선에 입각한 민족통일을 표방하는 ‘사회당’을 결성할 것을 선언하였다.
진보당계 사회대중당도 윤길중(尹吉重)계와 김달호계 사이에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11월 24일 김달호계만이 사회대중당 결성대회를 가졌고, 윤길중계는 장건상(張建相)을 영수로 ‘혁신당’ 발족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진통을 겪고 난 다음, 혁신계 대동통합운동은 결실을 보아 1월 21일 통일사회당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창당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서상일계의 사대당매별파, 윤길중계의 진보당계 잔류파, 김성숙(金成淑) 중심의 한국사회당, 정상구(鄭相九)계의 혁신동지총연맹 및 고정훈(高貞勳)의 사회혁신당이 통합한 통일사회당의 발기선언으로 혁신계의 대표세력이 총망라되었다.
민족적 주체성에 입각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당의 이념으로 표방한 통일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정치위원장 이동화를 비롯하여 각부서장을 임명하였다.
통일사회당 창당과정에서 당시 혁신세력으로 사회적으로 알려진 지도적 인물의 다수가 이 통합신당에 참가하였고, 혁신계의 국회의원 거의 전원이 이 당에 가담하여 상당한 정도로 통합혁신정당의 체모를 갖추고 있었으며, 절대적인 국민대중의 호응을 얻어 전국적 조직화의 작업을 하던 중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5월 22일 포고령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5·16군사정변 후 금지되었던 정치활동이 1963년부터 재개되었으나, 대부분의 당간부가 옥중에 있거나 <정치활동정화법>에 묶여 있던 중 1965년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국제국장 김철(金哲)이 귀국하여 1965년 5월 1일 통일사회당을 발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지되었으나, 1980년 10월 27일 헌법부칙에 따라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