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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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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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내용

한일협정 비준을 반대하여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서민호(徐珉濠)가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

1965년 5월 5일 한일협정 비준을 반대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서민호는 각계각층을 망라한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신당운동을 추진하다가 1966년 2월 15일 서클 중심의 붕당적 인상을 주는 신당에는 도저히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여 제2의 신당운동에 나섰다.

이 신당운동에서 이미 발족한 김철(金哲) 중심의 통일사회당(가칭)과의 합작을 위하여 통합의 방법을 절충하였으나, 민주사회주의 정책구현이라는 공통이념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계보의 차이로 통합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서민호는 다시 신우회·상록회·자강학회 등 재야 7개 단체 대표 등과 제휴하여 창당을 추진하여 민주사회당(가칭)창당준비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화암(鄭華巖)을 중심으로 한 혁신계가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사회당은 혁신계와 결별한 채, 서민호 중심의 보수계만으로 창당작업을 강행하여 1966년 5월 9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민주사회당(가칭) 창당 준비과정에서 서민호의 통일정책에 관한 입장표명이 <반공법>에 저촉된다는 혐의로 1966년 6월 3일 구속되어 실형선고를 받았으나, 불복하여 상고하는 동시에 창당을 서둘러 1967년 3월 9일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정당 명칭을 민주사회당에서 대중당으로 변경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당헌, 정강정책 및 결의문 등을 채택한 뒤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서민호를 제6대 대통령후보에 지명하였다.

그러나 다른 정당과의 통합을 위한 서민호의 사퇴로 후보를 내지 않고,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지역구 후보 65명, 전국구 후보 9명을 공천하였는데, 선거결과 반공법위반혐의로 구속되어 옥중출마한 서민호가 당선되어 제3당으로 의석을 갖게 되었다.

1971년 신민당을 상대로 통합을 협상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서민호가 신민당에 입당하게 되어 1971년 5월 이후 당대표 이몽(李蒙)에 의하여, 1972년 1월 이후 이동화(李東華)를 권한대행으로 하여 운영되다가 1972년 10·17조치로 활동이 중지되고, 정당활동 허용 후 법정지구당 미달로 1973년 6월 21일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정당사』(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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