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복산(郭福山)이 중심이 되어 1947년 2월 18일 군정청 학무국(學務局)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이 해 4월부터 신문기자 양성을 위한 수업을 시작했다.
조선신문학원은 곽복산이 운영하였으나 연희대학교 총장 백낙준(白樂濬), 새한민보 사장 설의식(薛義植)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의 교수들과 현역 중진 언론인들이 참여하였다.
교과 내용은 신문윤리, 신문의 명예훼손, 편집권 문제와 같은 제작 실무에 관련된 과목과 함께 정치, 경제, 법률, 역사, 철학, 노동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신문기자에게 필요한 광범한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포괄하여 편성하였다.
입학자격은 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 예정자로 정원은 50명이었는데,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6개월 과정의 전수과와 1년 과정의 본과생을 4기까지 배출하였다.
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명칭을 서울신문학원으로 바꾸어 학원을 개설하였다가 1953년에 환도하여 1962년까지 15년여의 기간에 기자를 위한 교육과 사진기자, 신문 영어반 등을 개설하여 많은 언론인을 양성하였고 언론학이 4년제 대학의 정규과정으로 정착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조선신문학원에서는 언론인 양성의 정규 과정 외에도 현역 언론인의 재교육을 위한 신문기자 아카데미 강좌, 전국 지방기자 강좌, 학교신문 편집강좌, 방송연구강좌, 시민을 위한 신문학술 강연, 언론관계 세미나 등도 개최하여 언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언론인들의 자질향상에 이바지했다.
1959년에는 대학 재학생을 위한 청강생 제도와 함께 신문·통신·방송·잡지사에 현직으로 근무하는 사람을 위한 연구생 제도를 두었다. 신문학원은 15기까지 배출한 뒤에 1969년 10월 11일에 창설된 중앙대학교 부설 신문방송연구소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