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9월 천도교 내의 청년들이 교리의 연구 및 선전, 그리고 조선의 문화향상과 발전을 목적으로 천도교교리강연부(天道敎敎理講硏部)를 설립하였고 1920년 3월 이 강연부를 개편하여 천도교청년회라 이름을 고쳤다.
이 청년회에서는 월간잡지 『개벽(開闢)』을 창간하는 한편 체육부를 두어 야구단을 조직하고 덴마크식 체조를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1년 4월에는 소년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청년회 내에 소년부를 설립하고 5월에는 처음으로 어린이날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1922년 6월에는 여성잡지 『부인』을 창간하였고 다음해 3월에는 소년잡지 『어린이』를 발간함으로써 우리나라 신문화운동을 주도하여 나갔다.
이 청년회를 주도한 인물은 이돈화(李敦化)·정도준(鄭道俊)·박달성(朴達成)·박내홍(朴來弘)·김옥빈(金玉斌)·이두성(李斗星)·신태련(申泰鍊) 등이었으며 이 단체는 1923년 9월 발전적으로 해체되어 ‘천도교청년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