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대장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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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1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1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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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판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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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판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
조성

초조대장경은 중국 북송(北宋)의 관판 대장경(官版大藏經: 971∼983)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간행한 한역(漢譯) 대장경이다.

송나라 태조에 의해서 간행한 대장경이 991년 고려에 전래되자, 고려는 커다란 자극을 받고 대장경 간행을 준비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993년(성종 12)부터 거란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1011년에는 현종이 남쪽으로 난을 피하였으나 거란군이 송악에서 물러나지 않으므로 군신이 무상의 대원을 발하여 대장경판을 새기기로 서원한 뒤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기록이 있다.(『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즉 거란족이 침입하자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고자 하는 국민정신을 통합하여 외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신앙심으로 대장경판을 조성한 것이다.

판각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011년에 시작하여 1087년까지 77년이 걸려 새겼다는 설이 있고, 1019년에서 1087년까지 69년 동안과 1011년에서 1051년까지 41년이 걸려 완성했다는 설이 있다.

물론 나름대로 근거는 있으나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에 실린 「대선왕제종교장조인소(代宣王諸宗敎藏彫印疏)」에 의하면 현종 재위(1009∼1031) 기간인 1011년에서 1029년경까지 북송의 관판 대장경과 같은 분량(『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수록분인 1076종 5048권)의 판각은 모두 마쳤음을 알 수 있고, 송 신역본(新譯本)은 그 뒤에 추가로 판각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장경은 권말에 간행기록이 전혀 없고, 권자본의 형식이며 한 면에 23항(行:줄) 14씩 배열되어 있고 장수 표시가 ‘장(丈)’으로 되어 있고 가끔 ’폭(幅)‘으로 표시 되어 있다. 그리고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에는 정교하고 뛰어난 판화가 수록되어 있다.

보존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족의 침입으로 불타 버린 뒤 현재까지 전래된 것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하여 그 동안 초조대장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와서야 초조대장경은 국내에도 전래되어 성암고서박물관, 호림박물관, 호암미술관과 개인 등이 약 300여 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일본의 경도 난젠지(南禪寺)와 대마도에 상당량의 초조대장경이 보존되고 있는데, 전체 전래되고 있는 권수가 약 2,000여 권 이상으로 추정된다.

앞으로의 연구에 의해 머지않아 초조대장경의 성격이 제대로 밝혀질 것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그 동안 북송의 관판 대장경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 비교해 보면 그 체제가 다르며, 오히려 북송판 보다 글씨가 좋고 정교하게 판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조대장경은 우리의 독자적인 판각으로 당시의 뛰어난 목판인쇄술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집필자
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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