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0년 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 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중 ‘시장세반대투쟁(市場稅反對鬪爭, 일명 百一稅事件)’을 주도하여 3,000여 명의 농민·상인들을 동원하여 시위 항쟁하고, 순천 세무주사 노자와[野澤辰三郎] 등 15명의 일본인들을 살해한 뒤 군청과 주재소를 습격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자진출두하여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경술국치로 감형되어 2년간 복역한 뒤 출감하였으나, 5년간 연금생활을 하였다. 1919년 3월 3일 평안남도 순천군 은산·자산읍의 독립만세시위운동에 기독교측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 기독교인·천도교인·주민 등 2,000여 명의 선두에 서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검거되었다.
그 뒤 재판에서 '백일세(百一稅) 투쟁' 전력으로 가중처벌을 적용받아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