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漢人) 출신으로, 서기 전 17년(유리왕 3)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화희(禾姬)와 함께 유리왕의 후실이 되었다.
그러나 서로 왕의 총애를 다투다가, 결국 유리왕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화희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스스로 왕궁을 떠났다. 이 사실을 안 유리왕이 급히 찾았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유리왕은 이를 슬퍼하여 「황조가(黃鳥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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