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

목차
관련 정보
근대사
제도
1899년, 철도 사업과 전화 업무를 전담하기 위하여 궁내부 산하에 신설된 부서.
제도/관청
설치 시기
1899년 6월
폐지 시기
1907년
상급 기관
궁내부|내장원|통감부
내용 요약

통신사는 1899년에 철도 사업과 전화 업무를 전담하기 위하여 궁내부 산하에 신설된 부서이다. 전화과는 궁 및 왕실과 각 정부 기관의 전화 가설과 교환 업무를 담당하였고, 철도과는 당시 진행된 철도 사업을 전담하였다. 전화과는 1907년에 폐지되었고, 철도과는 1900년 신설된 내장원 철도원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정의
1899년, 철도 사업과 전화 업무를 전담하기 위하여 궁내부 산하에 신설된 부서.
설치 목적

철도 사업과 전화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1899년 6월에 시달 제47호로 궁내부 관제를 개정하면서 설치된 부서이다.

기능과 역할

주임(奏任)주1급의 사장 1명과, 주2급의 주사 1명으로 구성되며, 그 산하에 전화과와 철도과를 두어 총괄하였다. 전화과와 철도과에는 각각 1명의 주임급 과장을 두었다. 전화과에는 주임급의 기사 2명, 판임급의 주사 8명을, 철도과에는 주임급의 기사 1명, 판임급 주사 2명을 두어 업무를 추진하였다. 1902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화 사업이 통신원에서 전담하였음을 감안하면 통신사 전화과는 궁과 왕실, 정부 기관의 전화 가설과 교환, 유지 보수 업무를 전담한 것으로 보인다.

1899년 5월 『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전화과는 과장 1인, 기사 1인, 주사 7명을 선발하여 운영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8월 주사 2명을 더 선발하였다. 통신사의 또 다른 부서인 철도과는 철도 부설 사업권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 사업권은 외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대한제국 정부에 사업권 양여를 강요하였던 만큼 이를 방어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도과는 1900년 4월 내장원 아래 설치된 철도국에 흡수되었다. 이때 철도원경인선경부선과 같은 황실 소속의 철도를 직할하여 일절의 사무를 처리하는 부서였는데, 철도과는 이 부서에 중요한 인적 기반이 되었다. 철도원의 인력 구성은 1명의 총재, 2명의 감독. 3명의 기사, 3명의 주사, 2명의 2인이었다.

이때 통신사의 철도과는 궁내부 관제에서 삭제되고 내장원에 증설된 철도원으로 업무가 이관되어 통신사는 전화 업무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전화과는 1905년 한일통신협정으로 국내 모든 통신업무가 통감부로 이관되었을 때에도 남겨졌으나, 1907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13권』, 「본성왕래신(本省往來信)(38)」- 한국의 현황보고 발제61호(1899. 6. 28)

단행본

박지태, 『대한제국기정책사료전집-I』(선인문화, 1999)
전기통신사 편찬위원회, 『한국전기통신100년사-상』(대한민국 체신부, 1985)
주석
주1

벼슬아치를 임명할 때에 주무 대신이 임금에게 상주하여 윤허를 얻은 후에 임용하던 일.    우리말샘

주2

조선 후기에, 각부의 대신이 임명하던 하위 관직. 이전 관리 등급의 참하관 칠품에서 구품직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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