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정부는 산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자력에 의한 철도 건설을 적극 추진하였다. 철도사업 감독으로 전환국장 이용익(李容翊)이 임명되었고, 철도 부설을 염두에 두고 서울-목포 간, 서울-원산-경흥 간, 원산-평양-진남포 간, 경흥-의주 간의 지형 답사도 이루어졌다. 외국인의 토지 주1 등으로 생활 기반을 잃은 농민들도 철도의 부설권과 인민의 생존 기반인 토지를 절대로 외국인에게 양도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었다.
기능과 역할
대한제국 정부는 우리 스스로 철도를 설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1900년(광무 4) 4월 6일 주2 제56호로 궁내부 산하 내장원에 철도원(鐵道院)을 새로 두었다. 철도원은 황실 소속 철도를 관장하였는데 경인철도와 경부철도를 직할하여 일체 사무를 처리하는 사무를 맡았다. 이때 통신사 철도과와 별도로 존재하던 농상공부 소관 철도국의 업무도 철도원으로 통합되었다.
내용/활동
소속 직원은 주3 총재 1명, 감독 2명, 주4 기사 3명, 주5 주사 3명과 기수 2명으로 구성하였다. 1901년(광무 5) 5월 1일 감독 3인, 기사 6인, 주사 6인, 기수 4인으로 증원되었고, 기사 중 3인은 철도과장, 문서과장, 회계과장을 겸임하였다. 1902년(광무 6) 8월 이후 철도원 철도과를 서무과로 개정하고, 기사 6인은 4인으로, 주사 6인은 7인으로 조정하며, 부총재를 두었다.
변천사항
경부철도회사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1901년(광무 5) 2월 고종 황제가 주식 2,000주, 황태자가 1,000주, 주6이 500주를 사서 소유하기로 계획을 세운 바 있었다. 그러나 자본금 준비 문제로 우리 측의 철도 부설은 이후에도 지지부진하였고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철도원도 러일전쟁 시기인 1905년 2월 28일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