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찰원 ()

근대사
제도
갑오개혁 시기, 관리의 선악과 공과를 규찰하고, 상벌을 공정하게 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의정부 산하 관서.
제도/관청
설치 시기
1894년(고종 31)
폐지 시기
1895년(고종 32)
상급 기관
의정부
내용 요약

도찰원은 갑오개혁 시기, 관리의 선악과 공과를 규찰하고, 상벌을 공정하게 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의정부 산하 관서이다. 1894년 6월 갑오개화파 정부에서는 중앙행정기구를 8개 아문으로 개편하였는데, 이때 예전 제도인 사헌부를 계승하여 의정부 소속 관청으로 설치한 것이다. 도찰원은 관리의 규찰과 법령과 규례의 심의, 상벌 시행, 회계 심사, 국정에 관한 상소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정의
갑오개혁 시기, 관리의 선악과 공과를 규찰하고, 상벌을 공정하게 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의정부 산하 관서.
설치 목적

관리의 규찰과 함께 관료의 임명과 해임, 법률의 제정, 국정에 관한 상소를 확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기능과 역할

도찰원에는 좌찬성이 겸임하는 원장 1명을 비롯하여, 주3 5명, 주사 10명을 두었다. 1894년 7월 사헌을 주1으로 고치고 정2품으로 하였다. 또한 충훈부(忠勳府)기공국(紀功局)으로 고쳐 의정부 산하 도찰원에서 관리하도록 하였다. 각 사(司)의 서리(胥吏) 선발과 함께 회계심사국 직무도 제정하였다.

회계심사국장은 도헌들 중에서 겸임하게 하였고, 서기관과 심사관도 도찰원 주사 중에서 겸임하도록 하였다. 한편 관원들의 상소 중에서 사직(辭職)과 대책을 올리거나 문제를 논의한 것 외에 관리의 허물에 대해 올린 것을 조사하였다. 법무아문에서 제정한 새 율령과 규례에 대한 가부(可否)를 평가하여 결정하였다.

변천사항

1895년 4월 아문 체제가 내각 관제로 개편되면서 폐지되고, 도찰원의 관리인 도헌은 내각 주2로 개칭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관보(官報)』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단행본

송병기 · 박용옥 · 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0)

논문

홍문기, 「갑오개혁 이후 비서기관의 변천과 군주권」(『한국사론』 52, 서울대학교, 2006)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둔, 사헌부의 종이품 벼슬. 정사를 논하고 백관(百官)을 감찰하며 기강을 확립하는 따위의 업무를 맡아보았다.    우리말샘

주2

조선 고종 32년(1895)에, 내각에 둔 칙임(勅任) 벼슬. 이듬해 내각을 의정부로 고치면서 없앴다.    우리말샘

주3

조선 말기, 의정부(議政府)와 도찰원(都察院)의 한 벼슬. 고종(高宗) 31년(1894)에 두었는데, 곧 도헌(都憲)으로 고쳤다.    바로가기

집필자
조재곤(서강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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