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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를 직업적으로 하는 전문선수들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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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권투를 직업적으로 하는 전문선수들의 경기.
내용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프로의 경우는 권투, 아마추어의 경우는 복싱이라 일컫고 있다. 본격적인 프로경기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목이 프로권투이다. 권투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16년이며 최초의 프로권투선수는 김정연(金正淵)이었다.

김정연은 고바야시 노부오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약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서정권(徐廷權)이 우리나라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계 랭킹(6위)에 오르는 등 활발한 활약을 하였다.

프로권투가 아마추어와 완전히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기구를 창설한 것은 1935년이었으며 이때 창설된 기구가 조선권투연맹이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10회 올림픽대회에 일본대표로 출전한 뒤 프로로 전향한 황을수(黃乙秀)와 일본에서 활약하던 이상묵(李相默)·김정복(金正福), 미국에서 돌아온 서정권 등에 의하여 조선권투연맹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부터 프로권투의 기반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광복과 함께 복싱계도 한때 난립현상을 보이면서 대한권투연합회와 조선권투연맹으로 양분되었으나, 1947년 12월 대한권투연맹으로 통합되면서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이 때 프로권투의 대표적인 선수들은 정복수(鄭福壽)·박형권(朴炯權)·송방헌(宋芳憲)·김주윤(金柱閏)·고봉아(高奉兒)·이일호(李日鎬) 등이었으나 국제무대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1955년 12월에 한국·필리핀·일본·타이 등 4개국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의 프로복싱을 관장하는 동양복싱연맹(OBF)이 창설되고, 1960년 11월 강세철(康世哲)이 OBF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되면서부터 우리나라 프로권투의 국제무대 진출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시 세계적인 프로복싱기구로는 1921년에 창설된 세계복싱협회(WBA)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1965년에 정식 회원국이 되었으며, 1966년 6월 김기수(金基洙)가 WBA에서 인정하는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물리치고 당당히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프로권투 강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WBA의 각 체급 챔피언타이틀을 차지한 우리나라 선수로는 김기수를 비롯하여 홍수환(洪秀煥)·유제두·김태식(金泰植)·김환진·유명우(柳明佑)·박찬영·백인철·박종팔(朴鍾八)·김봉준·문성길(文成吉)·이열우·최희용·박영균·이형철·최용수·백종권 등이 있다.

프로권투란 어디까지나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흥행업인만큼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기구도 세계복싱협회(WBA)·세계복싱평의회(WBC)·국제복싱연맹(IBF)의 3개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WBA에서 중남미지역 국가들을 주축으로 하는 WBC가 1963년에 새로 탄생하였으며, 우리나라는 같은 해에 WBC회원국이 됨으로써 양대 기구에 모두 속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선수로서 WBC의 챔피언타이틀을 최초로 획득한 선수는 염동균(廉東均)이다. 1976년 6월 일본의 로얄 고바야시를 물리치고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이 된 염동균에 이어, 김성준(金性俊)·김상현(金相賢)·박찬희(朴贊希)·김철호(金喆鎬)·장정구(張正九)·김용강·문성길·이열우·최점환·변정일·조인주·최요삼 등이 WBC의 각급 챔피언 타이틀을 골고루 차지하였던 우리나라의 간판급 스타들이다.

그 뒤 1983년에 새로 창설된 IBF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의 활약은 크게 빛났다. IBF의 각 체급 챔피언을 차지한 우리나라 선수로는 박종팔·최점환·전주도·권순천·정종관·정비원·최창호·장태일·서성인·김지원·류환길·이경연·신희섭·오민근·정기영·이승훈 등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IBF의 국제적인 권위가 떨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모두 WBA와 WBC로 빠져나갔다. 60년에 가까운 한국프로권투사상 가장 빛나는 전적을 남긴 선수는 홍수환과 장정구·유명우이다.

홍수환은 1974년 7월 적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이라는 곳에서 아놀드 테일러로부터 WBA 밴텀급 타이틀을 빼앗아온 데 이어, 1977년 11월에는 파나마의 엑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물리치고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우리나라 선수로서는 최초의 2체급에 걸쳐 챔피언을 획득하는 기록을 수립하였다.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이었던 장정구는 1988년 11월 타이틀을 자진 반납할 때까지 15차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같은 체급의 세계 최장수기록을 남겼다. 한편 유명우는 조이 올리보를 12회 판정으로 물리치고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을 차지한 뒤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인 17차 방어전에 성공하였다.

그 후 18차 방어전에서 챔피언밸트를 상실하였다가, 다시 일본의 이오까 히로끼로부터 챔피언벨트를 빼앗음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같은 기구 같은 체급의 두 차례 챔피언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한편 박종팔은 IBF 슈퍼미들급과 WBA 슈퍼미들급, 김용강은 WBC 플라이급과 WBA 플라이급, 문성길은 WBA 밴텀급과 WBC 슈퍼밴텀급, 이열우는 WBC 라이트플라이급과 WBA 플라이급, 최점환은 IBF 주니어 플라이급과 WBC 스트로급, 최희용은 WBA 미니멈급과 WBA 플라이급에서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챔피언타이틀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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