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선 ()

근대사
인물
개항기 조련국 부장을 역임한 무신.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884년(고종 21)
관련 사건
갑신정변
목차
정의
개항기 조련국 부장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파 인물들의 주선에 의하여 1883년(고종 20) 일본에 유학하였다. 당시 신문간행을 위하여 초빙되었던 일본인 우시바[牛場皁藏] 등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동반한 유학생 17명 중 한 사람으로, 서재필(徐載弼) 등 13명과 함께 도야마육군학교[戶山陸軍學校]에 입교하여 신식군사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귀국한 뒤 사관생도 14명 중 서재필은 이해 신설된 조련국(操鍊局)의 사관장이 되고, 하응선 등은 왕명에 의하여 그동안의 노고에 대하여 치하받고 부장(部將)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민영익(閔泳翊) 등 민씨척족 계열의 인물들이 군대통솔권을 장악하고 청나라의 힘을 빌리려는 의도에서 군대훈련을 위한 청나라인 교관을 초빙함으로써 개화파 인물을 군사조직에서 배제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군대에서 쫓겨나 개화파 인사들의 배려로 홍영식(洪英植)이 책임자로 있던 우정국(郵政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이들은 민씨척족 세력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게 된 데다가 개화파 인사들의 적극적인 권유에 의해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

갑신정변의 과정에서 사관생도 출신들과 함께 왕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민씨척족과 청나라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왕을 호종하던 홍영식과 박영교(朴泳敎), 사관생도 7명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1910년 개항 이래 각종 정변과 개혁시 참화를 당한 인물들을 신원하고 관직을 추증할 때 6품으로서 특별히 정3품 규장각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일성록(日省錄)』
『갑신일록(甲申日錄)』
『개화당연구』(이광린, 일조각, 1973)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