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사료집 ()

근대사
문헌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서. 자료집.
정의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서. 자료집.
개설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만든 책이다. 4책. 총 739면. A4판. 프린트본. 1919년 9월 23일 상해(上海)에서 펴냈다. 100질을 만들었으나, 현재 완질로 전하는 것은 미국 콜롬비아대학 극동도서관(極東圖書館)에 있는 1질뿐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사료집은 파리강화회의에 이어 개최되는 국제연맹회의에, 한민족의 자주독립이 역사적으로 마땅한 사실을 밝히는 한일 관계사를 추적해, 한국 민족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한 자료로 제출할 목적으로 편찬하였다.

편찬하게 된 계기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래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의 실상 등이 세계에서 여론화되지 못하고, 특히 일제의 정책적 선전으로 심하게 왜곡, 과장되었으므로 이를 바로잡을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편찬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1919년 7월 7일 정부령으로 국무원 내에 ‘임시사료편찬회’를 설치하였다.

총재에는 당시 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안창호(安昌浩), 주임에 독립신문사 사장 이광수(李光洙), 간사에 김홍서(金弘敍)를 임명하였다.

또한 위원에 김병조(金秉祚)·이원익(李元益)·장붕(張鵬)·김한(金翰)·김두봉(金枓奉)·박현환(朴賢煥)·김여제(金輿濟)·이영근(李泳根), 조역(助役)에 김명제(金明濟)·김석황(金錫璜)·김성봉(金成奉)·권지룡(權址龍)·유영국(柳榮國)·박석홍(朴錫弘)·박순흠(朴舜欽)·박영삼(朴靈三)·박지붕(朴址朋)·우승규(禹承圭)·신균창(申均敞)·차균현(車均賢)·차정신(車貞信)·정명익(鄭明翼)·이기영(李起榮)·이강하(李康夏)·강현석(姜賢錫)·김항신(金恒信)·정혜선(鄭惠善)·조숙경(趙叔景)·이메리·이봉순(李奉順) 등을 임명하였다.

이들은 자료 수집에서 간행에 이르는 전과정을 담당, 84일 만인 9월 23일 4책의 사료집을 완료하였다.

내용

이 사료집은 4편 4책으로 제1부터 제4까지 편제명(編題名)을 붙였다.

제1은 고대부터 경술국치까지의 한일 관계를 편년체로 엮었다. 유사(有史) 이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략을 계속해 온 사실(史實)을 부각시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 또한 우리의 전통 문화가 일본보다 우월하였음을 지적했다.

제2는 7개의 논설로 이루어졌는데, 한민족과 일본 민족과의 차이점을 분석해 일본 민족에 의한 한민족의 동화나 지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증했다.

제3은 사료집 4책 중 가장 역점을 두고 편찬한 것으로서, 1910년 경술국치로부터 1919년 3·1운동 발발 직전까지의 식민정책을 8개장으로 나누어 식민 통치의 실상과 성격을 파헤쳤다. 제4는 3·1독립운동사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3·1운동이 일어난 원인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의 과정을 8개장으로 나누어 모든 자료를 수집, 종합해 기술하였다.

의의와 평가

한편, 사료집은 편찬 기간이 짧고 국외에서 만들어져 자료 수집에서부터 편집 적임자의 부족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체재의 통일과 윤문·교정 등에 부족한 점이 보이며, 전체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한 자료적 성격을 가지는 저술이 되었다. 때문에 표제를 ‘한일관계사’라 확정하지 못하고 ‘한일관계사료집’으로 표기한 것 같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제연맹회의에 제출할 목적으로 4책의 사료집을 펴낸 것은, 곧 한민족의 강렬한 독립 의지의 한 표현이었다.

또한 한일 관계사인 동시에 3·1운동 때까지의 가능한 한국항일독립운동사 자료를 모두 수집, 정리한 자료집으로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특히, 제4는 3·1운동 관계의 모든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3·1독립운동사 연구에 기본 문헌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 4(국사편찬위원회, 1968)
「한일관계사료집해제(韓日關係史料集解題)」(윤병석, 『한국근대사료론(韓國近代史料論)』, 일주각, 1979)
집필자
한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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