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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중심인 고온의 기체로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恒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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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태양계의 중심인 고온의 기체로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恒星).
내용

한자로는 태양(太陽)이라 한다. 질량은 태양계 총 질량의 99%를 차지하여 행성의 운동을 지배하고 또 스스로의 중력으로 고온의 기체로 하여금 일정한 크기로 뭉쳐 있게 한다.

맨눈으로 보이는 표면인 광구(光球)는 약 400㎞ 두께의 층으로 약 5,800°K의 온도를 가진다. 이것은 가시광선이 투과할 수 있는 태양기의 최하부에 해당하는데, 보다 짧은 파장으로는 대기의 상층을 볼 수 있다.

태양의 흑점은 광구면에 나타나는 크기 7,000∼4만㎞의 어두운 구역인데, 여기에는 지구 자기장의 수천 배(2,000∼4,000가우스)나 되는 강한 자기장이 태양 내부로부터의 대류(對流)를 방해하므로 주위보다도 1,000∼2,000℃ 가량 온도가 낮아져서 어둡게 보인다.

17세기 초에 망원경으로 처음 흑점을 관측한 갈릴레이(Galilei,G.)는 흑점의 운동으로부터 태양의 자전을 발견하였다.

1843년 독일의 슈바베(Schwabe,S.H.)는 흑점의 개수와 나타나는 위치가 약 11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변동은 태양활동의 변동으로 생각되어 흑점수가 가장 많을 때를 태양활동의 극대기로, 반대로 가장 적을 때를 극소기라 부른다.

극대기에는 태양면의 폭발(플레어, flare)이나 태양풍, X선·γ선 등의 복사도 강해져서 지구의 대기에 그 영향이 전리층의 교란이나 극광(極光, aurora), 지자기의 변동 등으로 나타난다.

최근의 실례로 보면, 1989년 3월에 나타난 흑점은 지구크기의 행성이 70개나 들어갈 거대한 넓이를 차지하여 맨눈에도 보일 정도의 이례적인 것으로, 이에 수반되는 태양활동의 급격한 증가는 1991년으로 추정되었던 극대기를 1년 정도 앞당길 것으로 천문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태양은 지구표면 1㎡에 1.35㎾(가정용 전열기 하나 정도의 출력)로 열을 보내고 있으나, 이것은 태양의 총복사량의 약 20억분의 1에 지나지 않는데, 그 값은 거의 일정하므로 태양상수(太陽常數)로 불린다.

1980년에 발사된 태양활동 극대기 관측용(solar max) 인공위성의 정밀한 측정으로 1980년에서 1986년 사이에 태양의 출력이 0.1% 감소하였다가 최근에 다시 증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태양면에 큰 흑점군이 나타나면 태양상수의 값은 0.1% 정도 감소하지만, 흑점이 많이 나타나는 극대기에는 극소기(1986년경)보다 도리어 더 밝다.

그 이유는 흑점에서는 주위의 30%로 어둡지만 나머지 70%는 흑점 이외의 넓은 구역으로 분산되어 둘레에 보다 밝은 백반(白斑)을 만드는데, 그 수명이 흑점보다 길고, 또 이보다 훨씬 큰 무늬(초입상반, 超粒狀斑, supergranule)들이 같은 이치로 합세하여 전체로써 태양을 밝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흑점이 많은 극대기는 극소기보다 0.08% 정도 밝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태양의 막대한 복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은 19세기의 과학자들을 괴롭혔지만, 1938년에 베테(Bethe,H.A.)와 바이츠제커(Weizs○cker,C.F.F.von)가 수소원자핵이 헬륨원자핵으로 융합(4H→He)할 때, 질량의 일부가 막대한 에너지(1g→20兆Cal)로 탈바꿈하여 밖으로 방출되는 수소원자탄의 폭발과 같은 반응에 연유함을 밝혔다.

이는 별이 왜 빛을 내는지에 대한 수천년 묵은 수수께끼를 처음으로 해명한 셈이 되었다.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융합반응은 4H1→He4, 3He4→C12, C12+He4→O16, C12+C12→Ne20He4 등으로 차차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고, 이에 따라 별의 내부구조·크기·온도·밝기가 서서히 변하여 이른바 별의 진화라는 개념이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태양은 우리 인간생활의 에너지근원일 뿐만 아니라 모든 별들의 특성과 진화(일생)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가까운 표본으로서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의 태양연구는 1975년 12월에 소백산 연화봉(蓮華峰)에 입지름 20㎝의 태양망원경이 설치된 뒤 1977년부터 태양활동의 척도가 되는 흑점관측, 1989년부터는 14m 전파망원경에 의한 태양의 전파관측 등으로 관측이 진행되고 있다.

1992년에는 태양의 분광관측장치(分光觀測裝置)가 설치되어 태양연구의 국제적 협력에 대한 한몫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며, 태양활동의 상시관측에 의한 예보활동도 가능하게 될 날이 멀지 않다.

동양의 태양에 관한 기록은 ≪주역≫에 “해 속에 두(斗:별의 이름)성이 보인다(日中見斗).” 또는 “거품이 보인다(見沫).”는 것을 비롯한 흑점에 대한 기록이, 1609년 서양의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흑점을 관측한 것에 훨씬 앞서 많이 남아 있다.

기원전 160년경에 쓰인 ≪회남자 淮南子≫에 “해 속에는 웅크리고 앉은 까마귀가 있고, 달 속에는 두꺼비가 있다(日中有踆烏 而月中有蟾蜍).”는 구절은 고대중국의 해 속의 까마귀의 신화에 연유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서 漢書≫ 오행지(五行志)에 성제(成帝) 하평(河平) 1년 3월 을미(기원전 28년 5월 10일)에 “돈짝만한 흑점이 해 가운데에 있다(有黑氣大如錢 居日中央).”는 것이 최초의 흑점 관측기록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때인 1024년(현종 15)부터 1383년(우왕 9)에 걸쳐서 34건의 흑점기록이 보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1127년(인종 5) 3월에 “흑점의 크기가 달걀만하였다(日有黑子大如鷄卵).”는 기록이 있다. 흑점이 예외적으로 클 때에는 망원경 없이 맨눈에도 볼 수 있는데, 최근의 예로는 1989년 3월에 나타난 경우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양면의 현상이나 일식 이외에 태양운행을 관측하여 달력을 만드는 데 도움을 얻었다. 특히, 조선의 세종 때에 창제되었던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원나라의 곽수경(郭守敬)이 창작하였던 구면형 일구(해시계) 가운데 부품을 영침(影針)으로 개량한 것으로 대로변에 설치하여 널리 일반에게 전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에 관한 천문학적 문헌은 크게 태양의 운행과 일식(日食)·월식(月食)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고, 위치예보에 필요한 계산법이 여기에 실려 있다. 흑점의 출현은 예측이 불가하므로 ‘일중흑자(日中黑子)’와 같은 짧은 관측보고의 형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태양의 운행(지구의 공전)은 계절의 순환으로 나타나므로 농업을 천하의 대본(大本)으로 삼았던 우리 나라에서는 관측에 의하여 계절을 알아내는 일이 중요하였다.

태양이 하늘을 도는 길[黃道]에 따라 황경(黃經) 15°마다 구분된 24절기가 동양에서 사용된 까닭이다. 그 중 황경이 각각 0°·90°·180°·270°에 해당하는 춘분·하지·추분·동지는 사정(四正)이라고 하여 계절의 매듭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세종 때의 천문서 ≪칠정산내편 七政算內篇≫ 제2장 태양에서 보면, 태양의 위치를 28개의 별자리(28宿)를 기준으로 하여 계산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동양에서는 사정 가운데 동지를 특히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춘분점을 천구(天球)의 기준점으로 택하는 서양천문학의 전통과 대조되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태양이 남중할 때 지면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 규표(圭表)의 그림자 길이가 1년 중 가장 길어지는 동지가 그 정밀측정에 적합하였던 데 연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주대(周代)의 정월이 동지가 든 달이었던 사실에서도 수긍이 간다.

≪칠정산내편≫ 제2장에서, 첫째 계산의 대목이 동지의 적도일도(赤道日度:태양의 赤經)를 추산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태양의 운행에 관한 문헌은 세종 때에 출간된 ≪태양통궤 太陽通軌≫·≪대통력일통궤 大統曆日通軌≫가 있는데, 모두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淡)이 명나라의 ≪대통력일통궤≫를 서울의 경위도로 교정하여 편찬한 것이다.

일식은 예로부터 천변(天變)의 하나로 여겨져 많은 관측기록과 그 예보를 위한 계산법에 관한 여러 문헌들을 남겼다. 일식이 해와 달이 같은 방향[日月同度]에 보일 때 일어난다는 과학적인 기술이 고대기록에 보이기는 하지만, 해는 천자를 상징하고 달은 신하를 상징하여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이 특히 위정자에게 심상치 않은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식의 예보는 동양에서 천문관의 중요한 직책의 하나였다.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의 예율의제(禮律儀制)에 “천상(天象)의 점을 잘못 치면 곤장으로 60대를 맞는 형을 받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일식이 일어나면 그 천변으로부터 구원을 도모하는 구식(救食)의 의식이 거행되는데 이는 각 관청의 책임자가 천담복(淺淡服)을 입고 기도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고종 때 편찬된 ≪육전조례 六典條例≫의 예전(禮典) 관상감조(觀象監條)에 “일월식 때에는 관상감의 관원이 대궐의 뜰에 들어와서 의식대로 구식을 하되, 만약 일식에 친감(親監)하여 구식할 때에는 제조가 본감(관상감)을 인솔하고 대령하여 계고(啓告)한다.”고 하였다.

≪육전조례≫는 이·호·예·병·형·공의 육전이 각각 맡은 직책과 시행규칙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 일식의 관측으로 서운관의 관원이 삼각산, 금강산의 일출봉, 강화도 마니산 등에 파견된 기록이 ≪증보문헌비고≫의 상위고(象緯考)에 보이고, ≪헌종실록≫에는 “1836년(헌종 2년) 4월 계축(癸丑) 일식이 있어 해정(亥正)에서 자정(子正)에 이르름. 식(食)하기 5분 21초, 서북(西北)에서 초휴(初虧:이지러지기 시작함.)하고, 정북에서 식심(食甚:식의 최대)하고, 동북에서 복원(復圓:식의 끝)하였음. 식이 지하에 있었음.”이라는 일식기록이 있다.

이 일식은 기록대로 지평선 아래에서 일어난 것으로, 실제로 관측된 일식이 아니라 계산도 결과를 밝힌 데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일식기록에 더러 보이는데, 당시의 천문관이 얼마나 일식예보에 대해서 신경을 썼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다.

천문관은 일식예보의 착오로 국문(鞫問)당하기를 이처럼 두려워한 반면에, 천변지이(天變地異)의 인과응보적인 예측으로 위정자의 방종을 제재하는 기능도 가졌으므로, 연산군은 관상감을 사력서(司曆署)로 격하시킨 일까지 있었던 것이다.

일월식에 관한 계산법은 세종 때에 이순지·김담이 편찬한 ≪칠정산내편≫·≪칠정산외편≫의 교식(交食)과 ≪교식통궤 交食通軌≫·≪교식추보법 交食推步法≫, 그 밖에 저자와 출간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중수대명력 重修大明曆≫ 정묘년일식가령(丁卯年日食假令), ≪칠정산내편≫ 정묘년교식가령 등에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가령’이라는 말은 계산의 실례를 뜻하는데, 위의 가령에서는 1447년(세종 29) 8월 삭(朔)의 일식과 8월 망(望)의 월식에 대한 계산의 실례에 관련된 것을 다루고 있다.

참고문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한국의 책력(冊曆)』하(이은성, 전파과학사, 1979)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세종장헌대왕실록』 26,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0∼1984)
『조선과학사』(홍이섭, 정음사, 1946)
『理科年表』(日本國立天文臺 編, 1990)
Time(198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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