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대사관양성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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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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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을미개혁 당시 근대적 초급무관 양성을 위해 설치되었던 속성과정의 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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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 을미개혁 당시 근대적 초급무관 양성을 위해 설치되었던 속성과정의 사관학교.
내용

1894년(고종 31) 말 군제개편에 의해 중앙군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친군영(親軍營)을 강화하기 위해 훈련대가 창설되었다.

이에 따라 종래 청나라의 영향 하에 설치되었던 사관양성기관인 연무공원(鍊武公院)을 폐지하고, 1895년 5월 「훈련대사관양성소관제」를 공포해 훈련대에 필요한 초급장교를 양성하고자 설치하였다.

이 양성소는 훈련대에서 필요로 하는 초급무관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다.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일반인으로부터 학도를 모집해 3개월 동안 학(學)과 술(術)의 양과를 이수하게 한 뒤 참위(參尉)로 임명하였다. 수학시의 성적순위에 따라 임용하고 만약 결원이 없을 경우는 휴직을 명하되 학술을 계수(繼修)하게 하였다.

이 양성소의 인원 구성을 보면, 소장 1인(영관), 부관 1인(위관), 교관 11인(위관 3인 이하, 하사 8인 이하), 번역관 1인(주임), 주사 약간인(판임), 전어관(傳語官) 3인으로 되어 있다.

같은 해 7월 관제개정이 이루어져 학도의 수학기간이 8개월로 연장되고 교관을 보좌하는 하사(下士)의 명칭이 조교로 변경되었다. 전술(前述)한 관제에 규정된 소장·부관 및 주사는 군부(軍部) 내 직원이 겸임하게 하고 교관은 이에 해당하는 내외무관으로 보충한다는 규정을 철폐하였다.

같은 해 8월에 훈련대의 일부가 민비시해사건에 동원, 개입되었기 때문에 훈련대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면서 9월에는 훈련대가 해산되었다. 이로써 양성소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1896년 1월 「무관학교관제」가 공포되고 「훈련대사관양성소관제」가 폐지되어 이 양성소는 폐지되고, 대신 정식 사관학교인 무관학교가 설립되었다.

참고문헌

『일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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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경장연구』(유영익, 일조각, 1990)
『한국사강좌―근대편―』(이광린, 일조각, 1981)
「구한말육군무관학교」(차문섭, 『아세아연구』50, 1973)
「일본이 시행한 군제개혁과 경군」(황병무, 『논문집』Ⅴ, 육군사관학교, 1967)
「미국군사교관의 초빙과 연무공원」(이광린, 『진단학보』28, 1965)
「近代朝鮮に於ける政治的改革」(田保橋潔, 『近代朝鮮史硏究』, 朝鮮總督府, 1944)
집필자
박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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