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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업단(興業團)

    근대사단체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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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19년 봉천성(奉天省)무송현(撫松縣)에서 윤세복(尹世復)·김혁(金赫)·김호(金虎, 이칭: 김호익(金虎翼)] 등 재만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하였다. 목적은 표면상으로는 산업을 진흥시키며 이 곳에 이주해 온 한국동포 간의 순수한 친목을 도모한다고 표방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항일무장투쟁을 행동 목표로 내세우고 혁명민중 계몽훈련과 독립기지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토민관공리(土民官公吏)를 상대로 공동의 적인 일제침략주의와 전투하려는 독립운동자들을 적극 이해하고 협조하게 조처하였다.
    이 단체가 있었던 무송현은 산악이 중첩하고 있는 천연의 요새지였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할 만반의 준비를 완료하였다. 이 단체는 주로 동삼성(東三省) 일대를 누비면서 독립전쟁에 필요한 청년을 양성하고 강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전투상황을 연출한 단체로서도 특기할 만하다.
    처음에 이 단체를 이끈 인물은 김혁[신민부(新民府, 1925)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 뒤 대종교(大倧敎) 인사인 윤세복이 이 단체를 이끌었다. 윤세복을 도운 독립투쟁의 실질적 협조자는 단장으로 선임된 김호 외에 이원일(李源一)·오제동(吳濟東)·이현익(李顯翼) 등 대종교도들로 중견간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단군의 홍익인간정신을 정통사상으로 삼아 정신사의 맥을 이어나왔다. 이 단체는 1921년 10월 14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광복단(光復團), 대진단[大震團, 이칭: 태진단(太震團)], 태극단(太極團) 등과 함께 대동통합되어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조직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산하 단체로 들어갔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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