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팔족 ()

고대사
개념
삼국시대 백제 후기의 대표적 귀족가문의 8개 성씨.
정의
삼국시대 백제 후기의 대표적 귀족가문의 8개 성씨.
개설

‘8개의 큰 성씨(姓氏)’라는 뜻으로서, 삼국시대 백제 후기의 대표적인 귀족가문 8개를 아울러 가리키는 말이다. ‘대성팔족’은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고 『수서(隋書)』 등을 비롯한 중국 역사서의 “(백제) 나라 안에 큰 성씨로서 8개 집안이 있으니[國中大姓有八族]…”라는 문장에서 비롯된 말이며,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국내 역사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연원 및 변천

백제의 대성 8족에 대해 기록한 중국역사서는 『수서(隋書)』, 『북사(北史)』, 『신당서(新唐書)』, 『통전(通典)』, 그리고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한 『한원(翰苑)』 등이다. 그런데 8개 성씨에 대한 내용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수서』와 『신당서』에는 사씨(沙氏)․연씨(燕氏)․협씨(劦氏)․해씨(解氏)․정씨(貞氏)․국씨(國氏)․목씨(木氏)․백씨(苩氏)라고 적혀 있으며, 『북사』에는 사씨(沙氏)․연씨(燕氏)․협씨(劦氏)․해씨(解氏)․진씨(眞氏)․국씨(國氏)․목씨(木氏)․묘씨(苗氏)로 나온다. 또한, 『통전』에는 사씨(沙氏)․연씨(燕氏)․협씨(劦氏)․해씨(解氏)․진씨(眞氏)․국씨(國氏)․목씨(木氏)․백씨(苩氏)라고 적혀 있으며, 『한원』에 인용된 「괄지지」에는 사씨(沙氏)․연씨(燕氏)․협씨(劦氏)․해씨(解氏)․진씨(眞氏)․목씨(木氏)․수씨(首氏)로 나온다.

한편, 『삼국사기』 등의 국내기록에는 정씨(貞氏)․묘씨(苗氏)․수씨(首氏)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대신 진씨(眞氏)와 백씨(苩氏)가 자주 나온다. 이에 중국기록 가운데 『통전』이 가장 정확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내용

중국기록에서는 대성 8족이 모두 단성(單姓)인 것처럼 소개되었지만, 백제 귀족들 중에는 복성(複姓)이 많았다. 사씨는 본래 사택(沙宅·沙吒)씨이고, 협씨와 목씨는 목협(木劦)씨에서 나왔다. 진씨는 진모(眞牟), 조미(祖彌), 저미(姐彌)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으며, 국씨는 고이(古爾)씨, 연씨는 연비(燕比)씨와 같을 성씨일 개연성이 높다. 이는 마치 백제왕실 성씨인 부여씨(扶餘氏)를 중국사람들이 흔히 여씨(餘氏)로 기록한 것과 같다.

대성 8족 가운데 가장 일찍부터 중앙귀족으로 성장한 것은 해씨와 진씨였다. 그들은 왕실인 부여씨와 함께 북방에서 남하한 세력으로서, 백제 건국 무렵부터 군사력을 바탕으로 말갈(靺鞨)․낙랑(樂浪)․고구려(高句麗) 등 북쪽의 강적들과 대적하며 두각을 나타내더니 4세기 무렵부터는 번갈아 왕실의 외척으로 자리잡았다.

협씨와 목씨는 원래 목협씨에서 나왔다. 목협(木劦)은 ‘목리’ 혹은 ‘목례’로도 읽는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목라근자(木羅斤資)도 목협씨의 한사람이다. 목협씨가 언제 목씨와 협씨로 분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5세기 무렵 목협씨의 중앙 진출을 선도한 목협만치(木劦滿致)의 경우 『일본서기』에는 목만치(木滿致)로도 기재되어 있으므로 이때 이미 목씨로 단성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같은 책에는 6세기경의 백제인물로 목협매순(木劦昧淳)․목협마나(木劦麻那)․목협금돈(木劦今敦)․목협문차(木劦文次) 등이 소개되고 있어 단언하기 어렵다. 또, 목씨는 비교적 사례가 많으나, 협씨는 구체적인 사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면, 같은 목협씨를 중국사람들이 경우에 따라 목씨, 협씨 등으로 다르게 적어놓았을 개연성도 있다. 일본 고대의 호족 가운데 기(紀)씨를 목협씨에서 갈라져 나온 집안으로 보기도 한다. 여하튼 목협씨는 한성(漢城)도읍기 후반인 5세기에 중앙으로 진출하였으며, 서기 475년 웅진(熊津)천도를 주도하면서 중앙귀족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목협씨가 한성 남쪽지역에 기반을 둔 세력임을 시사한다.

사씨와 연씨는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뒤에 급성장한 세력이다. 따라서 사씨와 연씨의 근거지는 웅진(충남 공주), 사비(泗沘 ; 충남 부여)에서 가까운 금강유역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사씨는 사비로 천도한 뒤 왕비를 배출하고 사택지적(沙宅智積)이 대좌평(大佐平)에 오르는 등 최고의 귀족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의의와 평가

백제의 대성8족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립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이른바 대성 8족을 처음 소개한 것이 7세기 중엽에 편찬된 『수서』「백제전」이라는 점, 한성(漢城)도읍기의 유력 귀족들 중 우씨(優氏)를 비롯한 일부 성씨가 빠지고 대신 웅진(熊津)도읍기 이후에 새로이 귀족가문으로 발돋움한 사씨(沙氏)․연씨(燕氏) 등이 포함된 점, 한성~웅진도읍기에 왕실의 외척으로서 정권을 좌우하던 해씨와 진씨의 나열순서가 중간으로 밀려나고 사비(泗沘)도읍기에 왕실 외척으로 급부상한 사씨가 가장 먼저 적힌 점 등을 감안하면 사비 천도 이후에 성립했을 개연성이 가장 높다.

참고문헌

『한국고대사의 연구』(이홍직, 신구문화사, 1971)
『백제정치사연구』(노중국, 일조각, 1988)
『백제 지배세력 연구』(문동석, 혜안, 2007)
집필자
김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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