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학교 ()

단체
1907년 여주 이씨 일족이 세운 민간계 사립학교.
이칭
이칭
화산의숙, 정진의숙
정의
1907년 여주 이씨 일족이 세운 민간계 사립학교.
개설

1899년 밀양의 유학자 항재(恒齋) 이익구(李翊九) 등 여주 이씨 일족이 세운 사립학교이다. 근대적 교육기관의 설립 및 운영을 통해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전개한 사립학교 설립 운동에서 영남 유림들이 주도하여 설립한 사립학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연원 및 변천

1899년 밀양의 유학자 항재 이익구가 설립한 화산의숙(華山義塾)을 모태로 1907년 경상남도 밀양에 설립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경상남도 밀양군 퇴노리에 거주하던 영남 유림의 대표적인 세력인 여주 이씨 일족이 이를 이어받아 정진의숙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세웠다.

3.1운동 이후 정진학교를 재건한 후, 1921년 3월 수업연한 4년의 사립각종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설립자는 이병규, 손성훈(孫性壎), 이병곤, 이세형, 이병원, 안병기(安秉璣)의 6인이었고, 교장은 이병원이었다. 설립자에 이씨 일가 이외에도 부북면 덕곡리에서 사립 상덕의숙(尙德義塾)을 운영하던 손성훈과 경북 영천군 금호면 도남동에서 한문을 수학한 안병기 등이 포함되어 있어 이씨 일가와 친척 및 인근 사설 교육 기관을 포괄하여 설립 운영되었다.

사립 각종학교로 운영되던 정진학교는 1939년 4월 폐교되었고, 1942년 6월 10일 부북국민학교 부설 퇴로간이학교로 재운영되었다. 해방이후인 1945년 8월 화양국민학교로 되었으나, 1960년 정진학교의 전통을 잇고자 교명을 정진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기능과 역할

정진학교는 전통적인 유학교육을 실시함과 동시에 일본인 교사를 초빙하여 근대적인 지식 및 기술을 동시에 가르쳤다. 그리고 애국적인 내용의 창가(唱歌)교육과 조선사와 조선지리를 가르치고 학교 공문서식에 단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1921년 9월에 교장 및 교사가 경찰에 구금되는 일도 있었다.

또한 1926년 인근에 공립학교로 부북보통학교가 설립되어 부노리 및 인근 6개 마을 주민에게 학생 취학 및 학교부과금 납부를 종용하자, 부과금 납부를 거부하고, 학생들은 정진학교에 계속 다녀 조선총독부와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남 유림이 교육구국을 목표로 설립한 근대적인 교육기관으로써 민간계 사립학교 설립운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참고문헌

「사립정진학교설치인가신청건」-국가기록원 소장자료- (학무국 학무과, 1922)
「경남 밀양 근대교육의 요람 정진학교 연구」(김성준, 『국사관논총』23, 1991)
동아일보(1962.8.7)
집필자
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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